원천석(元天錫, 1330년 7월 23일(음력 7월 8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문인이다. 본관은 원주,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耘谷)이다. 고려 말에 정용별장(精勇別將)을 지낸 원열(原悅)의 손자이자 종부 령(宗簿 令)을 지낸 원윤적(原尹迪)의 아들이다.[1]

원천석
元天錫
출생1330년 7월 23일(음력 7월 8일)
사망불명
성별남성
국적고려
직업학자, 문인

생애

편집

진사가 되었으나 고려 말기 정치의 혼란으로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태종이 여러 차례 치악산까지 찾아와서 벼슬에 나아가기를 부탁하였으나, 끝내 거절하고 응하지 않았다.[1]

《야사》(野史) 6권이 있었다고 하는데, 허목의 《기언》을 보면, 자손들이 그 기록으로 집안이 멸족될 것을 우려해 불태웠다고 되어 있다.[1] 사후인 1612년(광해군4)에 칠봉서원(七峯書院)에 배향되었다.[2][1]

원천석이 등장한 작품

편집

저서 및 작품

편집
  • 《운곡시사》(耘谷詩史)
  • 시조 2수(눈맞아 휘어진 대를~,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허목, 《기언》 권18, 운곡선생명
  2. 〈칠봉서원 사적〉(《운곡시사》〈사적록〉에 수록됨)

참고 자료

편집
  • 《운곡시사》
  • 《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