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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겸(兪萬兼, 1889년 7월 13일 ~ 1944년 12월 13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다. 유길준의 맏아들이며, 유억겸의 형이기도 하다.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생애편집

배재학당흥화학교 출신이다. 그는 개화파이며 일본통이었던 아버지 유길준과 작은 아버지 유성준의 영향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1917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20년조선총독부로부터 문경군 군수에 임명되었고, 경상남도 서무과장(1921), 경상북도 내무부 사회과장(1924)을 지냈다. 이후 총독부 학무국 사무관(1926)을 거쳐 평안남도 참여관(1928), 경상북도 참여관(1930)으로 승진했으며, 학무국 사회과장(1932), 평안남도 참여관(1934), 충청북도 도지사를 역임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1][2] 1940년 5월 창씨개명을 거부하였다가 조선총독부의 압력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얼마 뒤 유림 단체인 경학원 부제학을 맡았다.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1941년 윤치호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의 임원이 되어 활동했고, 1942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로 임명되었다. 경학원 부제학으로 있으면서 1941년 대제학 박상준한상룡, 고원훈 등과 함께 주최한 유림 전승기원제에 부회장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일제로부터 훈3등 서보장의 서훈도 받았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2월 1일). 〈유성준 유만겸 유억겸 : 유길준의 양면성 ‘극복’한 유씨 일가의 친일상 (김도형)〉. 《친일파 99인 1》.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17.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각주편집

  1.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6일에 확인함. 
  2.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6일에 확인함. 
  3. 상투 자른 외교관 유길준, 고교 입학 석 달 만에 영어회화 중앙선데이
  4. "갑오경장 세 주역의 문집 발굴", 동아일보 1970년 07월 21일자 5면, 생활문화면
  5. "감사원 인사", 동아일보 1967년 05월 13일자 1면, 정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