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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1964년 10월 23일, 경상남도 남해군 ~ )은 대한민국인권 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이다.[1][2][3] 1992년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 간사, 사무국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고 2008년부터 정대협 상임대표를 역임하였다.[4][5]

목차

생애편집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나온 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석사 수료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한국기독교장로회 간사가 되고, 1992년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 간사, 사무국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고 2008년부터 상임대표를 맡았다.[6][7][8]

2013년 3월,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려 민족화해와 통일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늦봄 통일상' 18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늦봄 통일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양길승)는 수상자 선정과 관련하여 "2011년 1000회째를 쉬지 않고 이어온 수요시위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들어 냈고 꾸준한 남북연대 사업을 전개해 민족화해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라고 밝혔다.[6][7]

학력편집

  • 1983년 ~ 1987년: 한신대학교 신학과 학사
  • 1987년 ~ 1989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 석사과정 수료
  • 2005년 ~ 2007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경력편집

  • 1989년 1월: 한국기독교장로회 간사
  • ~ 1991년 11월: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간사
  • 1992년 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간사
  • ~ 1997년 12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국장
  • 1999년 8월 ~ 1997년 12월: 한국여성재단 사무처장
  • 2002년 2월 ~ 2005년 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
  • 2005년 2월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 2012년 5월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장

상훈편집

  • 2007년 제3회 이우정평화상[9]
  • 2012년 제9회 서울특별시여성상 대상[10]
  • 2013년 제18회 늦봄 통일상[11], 제20회 한신상[12]
  • 2015년 제9회 의암주논개상[13]

어록편집

  • 인터뷰 내용 중에서(2013년 8월 26일)[8]
    •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시위위안부 할머니들은 몇 명 참석했나?: 처음에는 여성 단체 활동가들만 집회에 참석했다.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 처음 공개석상에 선 것은 그해 8월 14일이었다. 이 분이 고(故) 김학순 할머니였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처음 문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율을 느낀다. 어려운 요청이었는데 이 분은 선뜻 공개 증언을 받아들였다. '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일본 정부가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발뺌하는 게 너무 기막혀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동안 숨겨졌고 은폐됐던 위안부 문제가 세상 바깥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 초기에 위안부 할머니의 소재를 어떻게 파악했나?: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 접수를 받겠다고 알렸을 때 누구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신고하진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운을 뗐다. 주위에서 알까 봐 몸을 사렸다. 처음에 우리는 다섯 분의 할머니를 각각 만났다. 이 분들은 자기만 혼자 살아남아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당시까지 위안부 생존자가 매스컴에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삶에서 중시하는 가치라는 게 있다. 가정을 뒷전에 두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헌신하는 당신의 심리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가? 공명심인가?: …신앙 같은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내 꿈은 목회자였다. 한신대 신학과를 나와 이화여대 대학원(기독교교육)에 다니면서 교회여성단체에서 일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기생관광' 실태를 접한 뒤 현장에 데모를 나가면서 '정대협' 간사직을 맡게 됐다. 비록 목회자의 길로는 못 갔지만, 그런 마음으로 일했던 것 같다.
    • 일본의 한 각료는 "미국도 전쟁에서 현지 여성에 대한 매춘과 강간이 있었고, 한국도 베트남전에서 그랬다. 뭐 다를 게 있느냐"고 말한 적 있다.: 어느 전쟁에서도 군인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해 성범죄가 자행돼 왔다. 미국이나 우리도 이런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군인 위안용'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나라는 일본밖에 없었다.
    • 과거에 있었던 일을 부인하는 일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작년에 일본의 한 극우단체 회원이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 하수구에 막대기를 하나 끼워놓고 갔다. 박물관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하수구라니, 얼마나 비굴한 일본의 모습인가. 매스컴에서는 이를 '말뚝 테러'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김복동 할머니가 '작대기를 꽂은 놈아, 고맙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박물관이 어디 있는 줄 몰랐을 텐데, 네 놈 때문에 잘 알려졌다'고 말했다. 일본을 상대하는 데는 이런 여유가 필요하다. 아베는 갈 데까지 갔다. 일본 정부의 본심을 세상에 다 보여줬다. 그러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일본이 원하는 바다. 일본 정부는 우리를 자극해서 갈등과 분쟁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를 빌미로 자신의 국민을 뭉치게 하려는 것이다. 일본이 자극할 때 우리가 응수하지 않으면 사그라든다.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과거 진상 조사와 자료 구축을 하고, 국제사회와 연대를 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학교에서는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어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가르친다. '홀로코스트'가 있던 시기에 '일본군 위안부 참상'도 있었다는 걸 교과서에 포함시키도록 해야 한다. 일본 정부를 부끄럽게 만드는 게 해답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결국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사과하게 될 것이다.

강의편집

저서편집

  • 《20년간의 수요일》. 웅진주니어. 2010년. ISBN 9788901114910
  • 《25년간의 수요일》. 웅진주니어. 2015년

칼럼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박진영. 할머니들과 함께한 20년…윤미향 정대협 대표의 '일과 인생'. 머니투데이. 2012년 8월 29일.
  2. 정대협 대표 "현 정부 남북교류, 군사정권보다 후퇴". 노컷뉴스. 2012년 11월 5일.
  3. 나이 든 소녀들의 어머니, 정대협 윤미향 대표
  4. 하시모토, 미군에 매춘 권유하자 주일미사령관 대답이… 한겨레 신문 2013.05.14
  5. 윤미향 "박근혜가 망친 위안부 문제, '정의기억재단'이 해결하겠다". (오마이TV)장윤선·박정호의 팟짱. 2016년 6월 8일.
  6. 장세풍. 늦봄 통일상에 윤미향 정대협 대표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내일신문. 2013년 4월 1일.
  7. 김미란. 정대협 윤미향 대표…18번째 ‘늦봄 통일상’ 수상자. 고발뉴스. 2013년 4월 1일.
  8. 최보식. 세계에서 가장 오래 끌어온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22년'…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조선일보. 2013년 8월 26일.
  9. '이우정평화상'은 평화운동의 선구자, 여성인권운동의 대모,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선도자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 사회의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일구기 위해 평생을 살았던 이우정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내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10. 윤미향 상임대표, 서울시여성상 대상 수상. 여성신문. 2012년 6월 29일.
  11. '늦봄 통일상'은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려 민족화해와 통일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12. 송아영. 올해 한신상 수상자에 ‘김해성 목사·윤미향 대표’. 한국대학신문. 2013년 4월 6일.
  13. 김동규. 제9회 의암주논개상에 정신대대책협 윤미향 대표 선정. 뉴스1. 2015년 9월 25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