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을지로(乙支路, Eulji-ro)는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97-3에서 시작하여 중구 신당동 224-2에 이르는 도로이자 법정동 이름이다. 왕복 6차선 도로이며 총 길이는 약 3km이다. 도로 전체 구간에 서울특별시도 제60호선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간다.[1] 또한 시청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사이에는 지하 상가가 조성되어 있다.

을지로3가역 동쪽 상가거리
을지로
총연장 3,018 m
기점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종점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역사편집

구리개편집

현재의 을지로1가을지로2가 사이에 낮은 언덕이 있었다. 진흙으로 된 언덕이 구리빛을 띄어 구리개라고 불렀다.[2] 조선 시대 한성부 남서(南署) 관할로 광통방(廣通坊), 회현방(會賢坊), 훈도방(薰陶坊), 대평방(大平坊), 성명방(誠明坊), 낙선방(樂善坊), 명철방(明哲坊) 지역에 해당한다.

구리개에는 한의원과 한약방이 모여 있었다.[3] 개화기 세워진 서양식 의원인 제중원은 처음엔 재동에 있었지만 1887년 의원들이 밀집해 있던 구리개로 확장 이전하였다.[4]

임오군란 당시 조선에 출병한 청나라 군대가 구리개에 주둔하였다. 포도대장 이경하의 집에 위안스카이가 주둔한 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채결되자 청나라 사람들이 이 일대에 살게 되었다. 이들은 최초의 한국 화교가 되었다.[2] 1909년 명동한국한성화교소학교가 개교하였고[5] 이후 지금까지 화교 커뮤니티가 이어지고 있다.

황금정편집

대한제국 말기부터 지금의 명동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거류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인들은 구리개를 황금정(일본어: 黃金町 고카네마치[*])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 1914년 일제에 의해 시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각 방(坊) 관할의 동을 병합하여 경성부 황금정 1정목(黃金町一丁目)~7정목(도로명은 황금정통, 黃金町通)으로 나뉘었다.[6]

일본은 1910년대에 "문명의 수준과 문화의 지표"로서 경성부의 도로 직선화를 추진하였다. 당시 황금정의 거류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황금정에서 명치정(명동)을 거쳐 용산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희망하였으나 총독부는 동서 축의 도로 개설을 계획하고 있었다. 거류민들과 총독부의 절충안으로 만들어 진 것이 황금정통으로 지금의 을지로 노선이 되었다. 총독부는 러시아가 개발한 다롄시를 참고 삼아 경성부의 주요 도로가 직선화 되도록 설계하였다.[7]:71-77

1925년 황금정7정목에 동대문운동장(당시 명칭 경성운동장)이 개장하였으며 2007년 12월 13일에 철거를 시작하였다.[8]

을지로편집

1946년 일본식 동명(洞名) 정리 사업에 따라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성씨인 을지(乙支)를 따서 개정되었다. 을지문덕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삼은 것은 당시 화교의 성장을 의식한 것이라고 한다.[2]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상업경공업의 중심지였던 을지로는 한국전쟁으로 큰 피해를 보았고 전후 재건기에 많은 난민이 모여 살면서 판자촌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1966년부터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을지로 일대는 상업중심지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세운상가가 세워졌고, 각종 시장들도 확장되었다.[9]

2010년 5월 26일 도로명 주소가 고시되었다.

산업편집

인쇄 골목편집

 
을지로 인쇄골목

조선 시대 지금의 충무로주자소가 있었고 1883년 지금의 을지로2가박문국이 세워졌다. 이듬해인 1884년 최초의 민간 인쇄소인 광인사가 창립하였다. 이후 충무로에서 을지로로 이어지는 길고 좁은 골목은 각종 인쇄업이 집중한 인쇄골목이 되었다. 2014년 통계청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인쇄관련 사업체 18,523개 중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업체가 5,492개로 전국의 29.6%이다. 인쇄 골목에 전국 인쇄업의 4분의 1 이상이 밀집하여 있는 셈이다.[10]

방직 산업편집

일제강점기 황금정 시기 을지로 일대에는 방직 산업도 밀집되었다. 1919년 창립한 경방김성수가 인수한 이후인 1927년 황금정1정목(을지로1가)에 사옥을 마련하였다.[11]

주요 경유지편집

서울특별시
  • 중구 (소공동 - 을지로1가 - 을지로2가 - 을지로3가 - 을지로4가 - 을지로5가 - 을지로6가 - 을지로7가 - 신당동)

노선편집

교차로 접속 노선 소재지 비고
소공로와 직결
소공로 중구 소공동 교차로 이름 없음
시청 무교로 명동
을지로1가 남대문로
을지로2가 삼일대로
을지로3가역 수표로
을지로동
을지로3가 충무로
을지로4가 창경궁로
을지로5가 동호로
을지로39길 교차로 이름 없음
광희동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장충단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을지로45길
한양공고앞 퇴계로
신당동

부속도로편집

  • ●: 전 구간 해당
  • ▲: 일부 구간 해당
  • ✖: 해당 없음
도로명 기점 종점 총연장 (m) 차량 통행 가능 일방통행 소재지
을지로1길 을지로1가 50 무교동 1 349 중구 명동
을지로3길 을지로1가 87 다동 33 337
을지로5길 을지로2가 11 수하동 39-3 183
을지로7길 을지로2가 50 수하동 4-3 213
을지로9길 을지로2가 101-46 수표동 47-6 214
을지로11길 을지로3가 65-7 수표동 11-1 219
을지로동
을지로12길 을지로3가 334-5 저동2가 20-1 194
을지로13길 을지로3가 65-2 을지로3가 96-1 120
을지로14길 을지로3가 315-5 초동 19-5 218
을지로15길 을지로3가 230-1 입정동 138-2 236
을지로16길 을지로3가 282-10 초동 18-5 234
을지로17길 을지로3가 241-8 입정동 1-3 231
을지로18길 을지로3가 255-1 인현동1가 94-1 258
을지로19길 을지로4가 9-6 산림동 207-1 232
을지로20길 을지로4가 310-68 인현동2가 73-1 250
광희동
을지로22길 을지로4가 310-4 인현동1가 1-11 127
을지로동
을지로24길 을지로4가 310-72 인현동2가 134-19 240
광희동
을지로27길 을지로4가 127 주교동 75-7 265 을지로동
을지로27가길 주교동 230 주교동 317-11 181
을지로28길 을지로4가 187-30 을지로4가 169-40 117
을지로30길 을지로4가 161-1 오장동 69-11 324
광희동
을지로32길 을지로5가 269-1 오장동 148-13 255
을지로동
을지로33길 을지로4가 157-1 을지로4가 104-1 237
을지로35길 을지로5가 2-1 주교동 1-2 334
을지로36길 을지로5가 273-9 오장동 139-17 251
광희동
을지로38길 을지로5가 72-1 쌍림동 34-3 259
을지로동
을지로39길 을지로6가 18-79 을지로6가 17-44 321
광희동
을지로40길 을지로6가 53-4 광희동1가 12-1 205
을지로41길 을지로6가 18-133 을지로6가 18-79 166
을지로42길 을지로6가 30-5 광희동1가 98 191
을지로43길 을지로6가 18-21 을지로6가 18-79 217
을지로44길 을지로6가 21-31 광희동1가 175-2 191
을지로45길 을지로7가 2-36 신당동 204-9 434
신당동

건물편집

교통편집

갤러리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 때문에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순환선 이름을 을지로 순환선이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2. ‘구리개’가 ‘황금정’ 되었다가 다시 ‘을지로’가 된 사연 - 유영호의 우리 동네 어슬렁 산책, 서울&, 2019년 10월 31일
  3. 을지로 약방거리 구리개, 의협신문, 2005년 2월 16일
  4. 왕현종·이경록·박형우, 〈구리개 제중원의 규모와 활동〉, 《의사학》, 제10권 제2호(통권 제19호) 2001년 12월, 대한의사학회
  5. 漢城華僑小校
  6.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1914년 4월 1일 시행) 참조.
  7. 토드 A. 헨리, 김백영 외 역, 《서울, 권력도시》, 산처럼, ISBN 978-89-9006-291-8
  8. 정윤수 (2021년 4월 1일).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이 남긴 교훈”. 《경향신문. 2022년 8월 7일에 확인함. 
  9. 기술과 예술이 있어 을지로는 얼어붙지 않을 거야, 중대신문, 2021년11월 2일
  10. 주자소에서 인현동 인쇄골목까지... 서울 인쇄문화의 뿌리와 변화를 알아보는<서울역사박물관대학원>, 서울역사박물관
  11. 경성방직, 근대기업의 한계를 넘어 한국산업의 상징이 되다, 아시아경제, 2012년 7월 4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