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남 (가수)

이규남(李圭南, 1910년 ~ 1974년)은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한국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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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남/임헌익
기본 정보
본명윤건혁
출생1910년
충청남도 연기
사망197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직업가수
장르트로트
활동 시기1932년 ~ 1950년
대표작
고달픈 신세 1936년
사막의 려인 1936년
장모님전 상서 1938년
진주라 천리 길 1941년
낙엽지는 신작로 1942년

생애편집

충청남도 연기군 출생으로 본명은 윤건혁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여 정식으로 피아노를 공부하고 돌아온 엘리트였다. 1932년 경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33년 임헌익(林憲翼)이라는 이름으로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첫 음반을 발표하여 가수로 데뷔했다. 초기에 취입한 노래는 신민요풍의 음악들이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활발한 가수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서는 미나미 쿠니오(南邦雄)라는 이름을 썼고, 임헌익 대신 이규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 것은 1936년빅타레코드에서 음반을 내면서 부터이다. 빅타에서 활동할 때는 홍난파가 특별히 이규남을 아껴 다수의 곡을 작곡해주었다. 1941년 다시 콜럼비아레코드사의 전속가수가 되었다.

이규남이 부른 총 140여 곡의 가요 중에는 대표작 〈진주라 천리 길〉(1941)이나 만요 분야의 히트작 〈장모님전 상서〉(1938) 등 인기곡도 적지 않았으나, 한국 전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면서 오랫동안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동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특히 〈진주라 천리 길〉은 월북 작사가인 조명암이 작사하고 작곡 역시 월북 작곡가 리면상이 맡은 곡이라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이 노래는 〈사의 찬미〉처럼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도나우 강의 잔물결〉 선율로 시작되는 세련된 곡이다.

조명암은 월북 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리면상은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까지 올라 북조선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음악인들이다. 이규남도 이들과 같이 북조선에서 순탄한 삶을 살면서 작곡과 무대예술 분야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나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이규남이 활동하던 일제 강점기 말에는 태평양 전쟁으로 군국가요가 널리 불리고 있었다. 이규남 역시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군사우편〉(1942)이나 〈승전가〉(1943)와 같은 노래를 발표하고 일본어 군국가요 〈열사의 맹서(일본어: 熱砂の誓い〉도 부르는 등 친일 가요를 보급하는 데 참여했다.[1] 〈군사우편〉은 병정되어 죽는 것이 소원이라 장렬히 전사한 뒤 부모에게 피묻은 적삼 하나만 보내겠다는 내용이며, 〈승전가〉는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고 승리를 기원하는 가사로 되어 있다.[2] 이 가운데 〈군사우편〉은 〈진주라 천리 길〉의 조명암과 리면상 콤비가 만든 노래이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어 있다.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이준희 (2004년 2월 9일).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다시 보기 (30)”. 오마이뉴스. 2008년 5월 20일에 확인함. 
  2. 이준희 (2004년 1월 26일). "나랏님을 위해 죽는 것이 소원" -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다시 보기 (28)-<군사우편>”. 오마이뉴스. 2008년 5월 2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