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군인)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군인

이병주(李丙冑, 1921년 ~ ?)는 일제 강점기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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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생애 1921년 ~ ?
출생지 간도
복무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복무 기간 1942년 ~ 1948년
최종 계급 만주군 중위/대한민국 육군 소령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학력편집

생애편집

간도 출신으로 룽징에서 자랐다. 만주신경군관학교를 제2기로 졸업한 뒤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다. 박정희와는 신경군관학교 동기생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었을 때 만주군 중위였다.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한반도에서 군정기가 시작되자 미군정 지역으로 들어왔고, 대한민국 국군에 창군 과정부터 참여하여 군번이 14번이었다.[1]

박정희가 육군사관학교 생도일 때 이병주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1연대 중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었으며, 같은 만주군 출신인 이한림과 함께 세 사람이 자주 어울렸다.[2] 이한림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이병주가 공산주의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했으며, 박정희도 점차 이에 동조해갔다. 이병주의 주장은 남쪽은 부패하고 혼란하여 민족통일을 이루기 어렵고 북쪽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이병주는 남조선로동당 계열 장교로 활동하였다. 여순 14연대 반란사건김지회홍순석은 이병주가 중대장으로 있을 때 그 휘하에서 복무하면서 영향을 받은 장교들이었다.[3] 박정희의 신경군관학교 동기생 가운데서는 이상진과 함께 대표적인 남로당 인맥이 되었다.

1948년에 대한민국 국군의 남로당 장교들이 대거 제거되었을 때 연대장급으로 있다가 체포되어 숙청되었다. 이때 만주군 출신 남로당 인맥 가운데 이상진도 함께 숙청되고 최남근은 사형당했으며, 박정희는 백선엽의 도움으로 살아났다.[4][5] 처형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장기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뒤 한국 전쟁을 거치며 사망했다는 증언도 있다.[6]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각주편집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2001년 6월 1일). 〈제4부 백남권 - 귀국과 창군 활동〉.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서울: 선인. ISBN 8989205158. 
  2. 조갑제 (1998년 10월 1일). 〈제7장 해방 공간 - 兄의 죽음과 연인의 등장〉.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2》. 서울: 조선일보사. ISBN 8973651935. 
  3. 김재홍 (1994년 11월 17일). “이한림회상록 - 매그루더 “쿠데타 진압” 군유”. 동아일보. 5~7면. 
  4. 특별취재팀 (1997년 11월 20일). “[실록 박정희시대] 35. 좌익 연루설 (下)”. 중앙일보. 10면.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5. 정운현 (2004년 8월 12일). '박정희 리스트'로 고구마 캐듯 수사 - 김창룡이 '구명'제안, 백선엽이 결심”. 오마이뉴스. 2008년 9월 8일에 확인함. 
  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4년 5월 20일). 〈제3부 방원철 (조이현 정리)〉. 《내가 겪은 한국전쟁과 박정희정부》. 서울: 선인. ISBN 8989205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