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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군(臨關郡)은 신라시대에 수도였던 과거 서라벌로 불린 경주 남부와 울산시 북구 강동동 지역으로 구성되었던 신라의 과거 행정구역이다. 모벌군(毛伐郡) 혹은 모화군(毛火郡)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기록편집

삼국사기의 기록

임관군(臨關郡)은 본래 모화군(毛火郡:모화(毛火)는 문화(蚊化)라고도 썼다.)인데 성덕왕이 이곳에 성을 쌓아 일본적(日本賊)의 길을 막았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이하 고려시대)은 경주에 합쳐져 속하였다. 영현이 둘이었다. 동진현(東津縣)은 본래 율포현(栗浦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울주에 합쳐져 속하였다. 하곡현(河曲縣:곡(曲)은 서(西)라고도 썼다.)은 파사왕 때 굴아화촌(屈阿火村)을 빼앗아 현(縣)을 설치하였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울주(蔚州)이다.

  •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1 신라 양주 임관군
신당서의 기록

신라는 변한의 후예이다. -중략- 장인들은 키가 3장(丈)인데 이빨은 톱니모양이고 손톱은 갈고리 모양에 몸에 검은 털이 났다. 음식은 안 익혀 먹고 짐승을 잡아 날로 뜯어먹고 심지어 사람까지 잡아먹는다. 그나라에 산이 수십리 이어져 있는 협곡이 있는데 쇠로 문을 만들어 굳게 지켰다. 그 이름을 관문(關門)이라 했다. 항시 쇠뇌를 쏘는 군사 수천명을 두어 지키게 했다.

  • 신당서 권220 열전 145, 동이 신라전

위치편집

중심지는 지금의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가 중심지인 것은 확실하지만 정확한 범위가 불분명하다. 경주시 남부 외동읍과 울산시 북구 지역이 옛 임관군 지역으로 추측된다.[1] 더구나 서라벌의 남쪽 관문이자 국방상의 요지이고 울산지방의 현(縣)들을 관할한 무척 큰 고을이었음에도 상세한 역사를 알 수 없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경주시 외동읍 사무소 홈페이지에 나오는 연혁에는 임관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홈페이지 상의 연혁에 의하면 외동읍은 고대 사로 6부족중에 본피부(本皮部)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