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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경주정씨족보(慶州鄭氏族譜)》는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있다. 경주 정씨(慶州 鄭氏)의 시조 지백호(智伯虎)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지면서 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또한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658년(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에 추봉되었다. 경주 정씨는 그 5세손 정동충(鄭東沖)이 정씨로 사성(賜姓)된 데서 비롯되었다.

중시조 정진후(鄭珍厚)는 고려조에 문과에 합격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군기시윤(軍器寺尹)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호(號)는 매포(梅圃),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경주 정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5명을 배출하였다.[1]

인물편집

  • 정휘(鄭暉, 1305년 ~ ?) : 정진후의 5대손. 고려 말에 관직이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이르렀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 정희계(鄭熙啓, ? ~ 1396년) : 정휘의 아들. 조선조 개국공신. 관직이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이르렀고, 계림군(雞林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경(良景)이다.
  • 정효상(鄭孝常, 1432년 ~ 1481년) : 사예(司藝) 정지년(鄭知年)의 차남. 관직이 이조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계림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제안(齊安)이다.
  • 정발(鄭撥, 1553년 ~ 1592년) : 정희계의 6대손. 관직이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에 이르렀다. 임진왜란부산에 상륙한 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했다. 후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항렬자편집

  • 문헌공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