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정씨(慶州 鄭氏)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경주 정씨
慶州 鄭氏
나라한국
관향경상북도 경주시
시조지백호(智伯虎)
중시조정진후(鄭珍厚)
집성촌경상북도 청송군, 김천시
경상남도 남해군, 통영시
전라남도 순천시, 고흥군, 신안군, 장성군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충청남도 보령시, 금산군
충청북도 충주시, 영동군
경기도 연천군
함경남도 영흥군
주요 인물정휘, 정희계, 정지년, 정효항, 정효상, 정지운, 정승복, 정발, 정희채, 정준호, 정지형, 정순균, 정은보
인구(2015년)350,587명

기원 편집

『경주정씨족보(慶州鄭氏族譜)』는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있다. 지백호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좌명공신(開國佐命功臣)이 되었고, 32년(유리이사금 9년)에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지면서 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658년(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에 추봉되었다. 경주 정씨는 그 5세손 정동충(鄭東沖)이 정씨로 사성(賜姓)된 데서 비롯되었다.

역사 편집

중시조 정진후(鄭珍厚)는 고려조에 문과에 합격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군기시윤(軍器寺尹)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호(號)는 매포(梅圃),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경주 정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5명을 배출하였다.[1]

인물 편집

  • 정휘(鄭暉, 1305년 ~ ?) : 정진후의 5대손. 고려 말에 관직이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이르렀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 정희계(鄭熙啓, ? ~ 1396년) : 정휘의 아들. 조선조 개국공신. 관직이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이르렀고, 계림군(雞林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경(良景)이다.
  • 정효상(鄭孝常, 1432년 ~ 1481년) : 사예(司藝) 정지년(鄭知年)의 차남. 관직이 이조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계림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제안(齊安)이다.
  • 정발(鄭撥, 1553년 ~ 1592년) : 정희계의 6대손. 관직이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에 이르렀다. 임진왜란부산에 상륙한 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했다. 후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항렬자 편집

  • 문헌공파
66세 67세 68세 69세 70세 71세 72세 73세 74세 75세 76세 77세 78세 79세
영(永) 口조(朝) 병(炳) 口균(均) 종(鍾) 口수(洙) 낙(樂) 口섭(燮) 경(坰) 口옥(鈺) 순(淳) 口권(權) 경(炅) 口기(基)
  • 양경공파
66세 67세 68세 69세 70세 71세 72세 73세 74세 75세 76세 77세 78세 79세 80세 81세 82세
口해(海) 동(東) 口훈(薰) 지(址) 口호(鎬) 택(澤) 口직(稙) 원(愿) 口채(埰) 일(鎰) 口구(求) 락(樂) 口욱(煜) 준(埈) 口선(善) 기(淇) 口수(秀)
  • 월성위공파
66세 67세 68세 69세 70세 71세 72세 73세 74세 75세 76세
口식(植) 헌(憲) 口수(壽) 용(鎔) 口준(準) 병(秉) 口환(煥) 口훈(薰) 규(奎) 口석(錫) 문(汶)
  • 평장공파
66세 67세 68세 69세 70세 71세 72세 73세 74세 75세
口순(淳)
口영(永)
상(相)
조(朝)
口열(烈)
口병(炳)
재(載)
균(均)
口흠(欽)
口용(鎔)
수(洙)
홍(洪)
口식(植)
口주(柱)
연(然)
훈(薰)
口봉(琫) 호(鎬)
용(鏞)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편집

  • 익녕군의 서장남인 의천군(義泉君) 이승은(李承恩)의 부인 군부인 경주 정씨
  • 영산군(성종의 서자)의 부인 교성군부인 경주 정씨
  • 인종의 후궁 혜빈 정씨

집성촌 편집

경기도 편집

경상북도 편집

경상남도 편집

전라남도 편집

전북특별자치도 편집

충청남도 편집

충청북도 편집

함경남도 편집

각주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