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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종 갈문왕(立宗葛文王, ? ~ 537) 또는 사부지 갈문왕(徙夫智葛文王 · 徙夫知葛文王)은 신라 시대의 왕족이다. 지증왕의 아들이고, 법흥왕의 아우이자 사위이며, 진흥왕 · 숙흘종의 아버지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서는 갈문왕입종(葛文王立宗)으로 칭해진다. 한편 신라 당시의 금석문인 〈울진봉평리신라비〉에서는 사부지갈문왕(徙夫智葛文王), 〈울주천전리각석〉 원명과 추명에서는 사탁부갈문왕(沙喙部葛文王) · 사부지갈문왕(徙夫知葛文王)으로 칭해진다.

목차

생애편집

가계편집

입종갈문왕은 법흥왕(法興王)의 아우였으며, 법흥왕의 딸인 지소부인(只召夫人)과 결혼하여 진흥왕(眞興王)을 낳았다.[1]

울진봉평리비에서의 행적편집

524년 ​1월 15일, 사탁부의 사부지갈문왕은 탁부(啄部)의 모즉지매금왕(牟即智寐錦王)과 등을 비롯한 신라 정계의 주요인사들과 함께 거벌모라(居伐牟羅)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에 대한 판결을 교시하였다.[2]

울주천전리각석에서의 행적편집

525년 ​6월 18일, 사부지갈문왕이 어사추여랑(於史鄒女郎)과 함께 계곡에 놀러왔다가 그 곳의 바위에 글을 새기고는 그 계곡을 "서석곡(書石谷)"이라 이름붙였다.[3]

537년, 사부지갈문왕은 사망하였다.[4]

이후 539년 7월 3일,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비(只沒尸兮妃) · 무즉지태왕의 부인 부걸지비(夫乞支妃) · 사부지갈문왕의 아들 심맥부지(深麥夫知) 등이 서석곡을 찾아와 사부지갈문왕을 추모하며 글을 새겼다.[5]

《화랑세기》 필사본편집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숙흘종입종의 아들인데, 위화랑오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금진이 생모로 나온다.[6] 다만 《화랑세기》 필사본은 학계에서 위서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기에 신뢰하기 어렵다.

가계편집

참고 문헌편집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삼국사기》 신라본기 · 《삼국유사》 왕력
  2. 〈울진봉평리신라비〉
  3. 〈울주천전리각석 원명〉
  4. 〈울주천전리각석 추명〉
  5. 〈울주천전리각석 추명〉
  6. 《화랑세기》 필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