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방 (전한)
장방(張放, ? ~ 기원전 6년)은 전한 말기의 관료로, 경조윤 두릉현(杜陵縣) 사람이다. 대사마 장안세의 현손이자 태복 장연수의 증손이다. 어머니가 원제의 누이동생 경무공주였기 때문에, 원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성제의 총애를 받았다.
생애
편집홍가 연간, 성제는 무제를 본받아 측근들과 연회를 즐겼다. 평소 성제의 총애를 받은 장방은 외척 허가의 딸과 혼인하였고, 시중·중랑장으로 임용되었다. 비록 부를 열지는 못했지만 위세는 장군과 다름없었으며, 성제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출궁할 때에도 함께하는 등 오랫동안 총애를 받았다.
천하에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승상 설선과 어사대부 적방진은 장방이 저지른 잘못을 들춰내어 탄핵하였다. 장방은 북지도위로 좌천되었으나, 몇 달 후 다시 조정에 시중으로 복귀하였다. 하지만 태후가 다시 장방의 이야기를 들추었기 때문에, 장방은 다시 천수속국도위로 발령되었다.
비록 장방은 오랫동안 변방에 나가 있었지만, 성제는 여러 차례 편지를 써 안부를 물었다. 한 해 남짓 지나 경무공주가 병들자 장방을 불러들였고, 몇 달 후 병이 낫자 하동도위로 전출시켰다. 성제는 장방을 좋아하였으나 태후와 대신들이 견제하였기 때문에, 장방을 내보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였다.
나중에 장방은 다시 부름을 받아 시중·광록대부가 되고 봉록이 중이천석에 이르렀으나, 한 해 남짓 지나 승상 적방진이 다시 장방을 탄핵하였다. 성제는 어쩔 수 없이 장방을 파면하면서도, 5백만 전을 주어 봉국으로 가게 하였다. 몇 달 후 성제가 붕어하였고, 장방은 성제를 그리워하며 곡하다가 죽었다. 시호를 사(思)라 하였고, 아들 장순이 작위를 이었다.
출전
편집선대 아버지 부평공후 장림 |
전한의 부평후 기원전 32년 ~ 기원전 6년 |
후대 아들 장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