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손 사(顓孫師, 기원전 503년 ~ ?)는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 공자의 제자로, 자장(子張)이며 (陳)나라 사람이다.

생애편집

매사에 의욕적인 인물로 배우는 데도 열의가 있었고, 위급한 것을 보면 생명을 내걸 정도로 의협심이 강했다. 공자보다 48세 아래 후기제자로 공문십철에는 들지 못했다.

평가편집

공자는 자장이 다른 사람에게 과시할 수 있는 외모나 명성, 출세 등에 관심을 집중한다고 보았다. <논어> 「위정편」을 보면 자장이 녹(祿)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많이 듣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빼놓고 그 나머지를 조심스럽게 말하면 허물이 적으며,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을 빼놓고 그 나머지를 조심스럽게 행하면 후회하는 것이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실에 후회함이 적으면 녹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자장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언행을 삼가는 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공자는 자장이 출세에 너무 관심을 두는 것을 우려했고 또 편벽하다고 생각했다.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門人)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자유(子游)는 “나의 벗 자장은 하기 어려운 것을 할 수 있지만, 아직 인(仁)을 이루지는 못했다.” 라고 하였고, 증삼(曾參)은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仁)을 행하기는 어렵구나.” 라고 하였다.

자장은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을수록 자신의 단점과 잘못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여 공자의 문인으로서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갖추려고 열심히 노력하였다. 공자에게 묻는 질문도 점차 출세나 명성보다는 사물의 이치나 덕을 높이는 방법 등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자장은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려고 노력하였기에, 훗날 자공은 <공자가어> 「제자행편」에서 자장에 대해 “아름다운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귀한 지위를 가졌어도 잘한다고 여기지 아니하며, 남을 업신여기거나 안일에 빠지지 아니하고, 고할 데 없는 이들에게 거만하게 굴지 않는 것은 자장의 행동이다.” 라고 평가를 했다.

공자 사후의 자장편집

공자사후에 제자들은 여러 문파로 나뉘었는데, 증자(曾子), 자사(子思)의 계통에 속하는 내성파(안으로 반성. 마음 수양을 중시. 仁중심)가 있었고 자장은 자하, 유약 등과 함께 예(禮)를 중시하는 숭례파를 형성하며 문인들을 가르쳤다.

함께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