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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류씨(全州 柳氏)는 전라북도 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백제에서 유래된 토성(土姓)으로 류혼(柳渾), 류습(柳濕), 류지(柳池)를 각각 시조로 하는 3파가 있다.

전주 류씨 (全州 柳氏)
관향 전라북도 전주시
시조 류혼(柳渾), 류습(柳濕), 류지(柳池)
주요 집성촌 전라북도 전주시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주요 인물 류방헌, 류신, 류광식, 유극서, 류의손, 유숭조, 류헌, 류영경, 류복립, 유정량, 유경창, 유겸명, 류심, 류정원, 유두환, 유림, 류기수, 류원식, 류청, 유기정, 유치송, 류승번, 류혁인, 유길촌, 유장희, 유안진, 유홍종, 류희열, 유인촌, 유일호, 류석춘, 류성걸, 유기홍, 류철균
인구(2015년) 78,690명
전주류씨 대종중

목차

역사

전주 류씨에 관한 기록으로 백제 무왕 때 일본(日本) 성덕태자(聖德太子)의 요청으로 사천왕사(四天王寺)를 건축(建築)하러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류중광(柳重光)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그 후손은 지금도 사천왕사를 보수(補修)해오면서 사천왕사 인근(隣近)에 살고 있다. 일본곤고구미(金剛組)는 578년(백제 위덕왕 34년) 백제류중광(柳重光)이 설립하여 2006년까지 존재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었다. 따라서 전주류씨는 고려 왕건(王建) 때 창성(創姓)된 문화 류씨(文化柳氏)보다 훨씬 앞서 백제 때 창성(創姓)된 성씨(姓氏)인 것이다.[1]

충숙공파

충숙공파(忠肅公派)는 고려조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전주인(全州人) 류방헌(柳邦憲, 944년 ~ 1009년) 묘지명(墓誌銘)에 증조부로 기술된 류기휴(柳基休)를 시조로 하고 류혼(柳渾)을 중시조로 하여 1993년 《전주류씨호은공파세보》를 발간하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전주(全州) 승화현(承化縣) 출신의 류방헌(柳邦憲)이 972년(고려 광종 23년)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009년(현종 즉위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에 이르렀다.[2] 전주인(全州人) 류방헌(柳邦憲) 묘지명(墓誌銘)에 따르면 증조부는 통일신라 때 각간(角干)이라는 향직(鄕職)을 지낸 류기휴(柳基休)이고, 할아버지 류법반(柳法攀)은 후백제(百濟)의 우장군(右將軍)을 역임하였으며, 아버지 류윤겸(柳潤謙)이 고려 초 검무(檢務)·조장(租藏)이 되었다가 대감(大監)에 이르렀다. 그의 어머니 승화군대부인(承化郡大夫人) 담양 이씨(潭陽李氏)는 후백제 신검(神劍)의 정변을 예견하고 몸을 숨긴 이염악(李廉岳)의 딸이다.[3] 류방헌의 선대는 전주(全州) 승화현(承化縣)에서 토착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서 백제에서 벼슬하다가 고려로 귀부해 온 가문이다. 계대가 고려 말 류능(柳能)의 가문(家門)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령공파

장령공파(掌令公派) 시조 류습(柳濕)은 고려(高麗) 말에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에 추증(追贈)되고 완산백(完山伯)에 추봉(追封)되었다. 류습을 시조로 하는 장령공파 측은 2004년 대동보를 발간하면서 여러 설을 검토해 보았으나 문적(文蹟)이 부실(不實)하여 시조의 상계를 알 수 없으므로 시조 상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였다.

현감공파

현감공파(縣監公派)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류지(柳池)를 시조로 한다. 조(祖)인 류방직(柳邦直)은 제도도부승(諸道都副承)이고, 고(高)인 류운(柳橒)은 국자생원(國子生員)이다. 평장사공단은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에 있다.

인물

  • 류방헌(柳邦憲, 944년 ~ 1009년) : 972년(광종 23)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1009년(현종 즉위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간(貞簡).
  • 류신(柳伸, ? ~ 1104년) : 고려 문종(文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1103년(숙종 8년) 좌복야(左僕射)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신(忠愼).
  • 류광식(柳光植, ? ~ 1221년) : 남성시(南省試)에 합격한 뒤 1186년(명종 16) 합문지후(閤門祗侯)를 거쳐 1221년(고종 8년) 문하시랑 동 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 류의손(柳義孫, 1398년 ~ 1450년) : 류습(柳濕)의 증손. 1426년(세종 8)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이르렀다.
  • 유숭조(柳崇祖, 1452년 ~ 1512년) : 1489년(성종 20)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 류빈(柳濱, ? ~ 1509년) : 1483년(성종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참판 등을 지냈으나 1504년 갑자사화 때 전라도로 유배되었다. 1507년(중종 2)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록되었고, 이조판서를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시호는 충정(忠定).
  • 류헌(柳軒, 1462년 ~ 1506년) : 류빈의 증손. 1489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대사간이 되었다. 갑자사화가 일어나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1506년 중종반정 뒤 돌아오다가 왜구들에게 살해당했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 류영경(柳永慶, 1550년 ~ 1608년) : 류헌의 증손. 1572년(선조 5) 문과에 급제하고,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어 전양부원군(全陽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에 올랐다.
  • 류경창(柳慶昌, 1593년 ~ 1662년) : 16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효종 때 대사간을 지냈으며, 현종 때 대사헌에 올랐다. 숙종조에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 류정원(柳正源, 1703년 ~ 1761년) : 1735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761년(영조 37년) 대사간(大司諫)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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