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정몽구

기업가,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

정몽구(鄭夢九, 1938년 3월 19일 ~ )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완성차 산업을 주축으로 부품, 철강, 건설, 물류, 금융·서비스 등 그룹의 주력 분야를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낸 세계가 주목하는 경영인이다.

정몽구
출생1938년 3월 19일(1938-03-19) (81세)
일제강점기 강원도 통천군
거주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
본관하동[1]
학력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 학사
직업기업인
소속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순자산7조 4484억원
부모아버지 정주영, 어머니 변중석
배우자이정화
자녀1남 3녀
가족8남 3녀 중 차남
병역대한민국 육군(1964년 ~ 1967년) 병장 전역
웹사이트현대차 정몽구 재단

목차

개요편집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유례없는 단기간에 세계 5위 자동차 업체로 성장시킨 창의와 혁신의 리더십과 경영철학은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필수 강의주제로 채택할 만큼 경영학의 교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정몽구 회장을 ‘세계 100대 최고 경영자’에 선정했다. 특히 생산 혁신, 연구개발 혁신,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혁신 등 공학과 경영을 결합한 정몽구 회장의 과감한 시도와 성취는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학력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경력편집

  • 1970년 2월 ~ 1970년 9월 :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부품과 과장
  • 1970년 10월 ~ 1970년 12월 :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부품과 차장
  • 1972년 1월 ~ 1973년 2월 :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부장
  • 1973년 3월 ~ 1973년 5월 : 현대건설 자재부 부장
  • 1973년 6월 ~ 1974년 2월 :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이사
  • 1974년 2월 ~ 1987년 : 현대자동차 써비스 대표이사 사장
  • 1977년 7월 ~ 1987년 1월 : 현대정공 대표이사 사장
  • 1981년 2월 ~ 1987년 1월 : 현대강관 대표이사 사장
  • 1983년 1월 ~ 1984년 2월 : 제4대 한국 컨테이너 공업협회 회장
  • 1984년 2월 ~ 1997년 2월 :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 1985년 4월 ~ 1997년 1월 : 대한양궁협회 회장
  • 1986년 11월 ~ 1987년 1월 :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 1986년 10월 ~ 1997년 11월 : 아시아양궁연맹 회장
  • 1987년 1월 ~ 1998년 1월 :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
  • 1987년 2월 ~ 1996년 1월 : 현대정공 회장
  • 1987년 2월 ~ 1996년 1월 : 현대자동차써비스 회장
  • 1987년 2월 ~ 1996년 1월 : 현대강관 회장
  • 1987년 2월 ~ 1996년 1월 : 현대산업개발 회장
  • 1987년 2월 ~ 1996년 1월 : 인천제철 회장
  • 1993년 5월 ~ 1996년 2월 : 대한체육회 회장
  • 1993년 9월 ~ 1999년 7월 : 국제양궁연맹 부회장
  • 1994년 3월 ~ 1998년 : 현대우주항공 회장
  • 1996년 1월 ~ 2000년 3월 : 현대그룹 회장
  • 1997년 1월 ~ 현재 : 대한양궁협회 명예 회장
  • 1997년 2월 ~ 2017년 2월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1997년 3월 : 한러 경제협회 회장
  • 1997년 11월 ~ 현재 : 아시아양궁연맹 명예 회장
  • 1998년 4월 ~ 2000년 3월 : 현대경영자협의회 회장
  • 1999년 ~ 2001년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 1999년 1월 ~ 2002년 3월 : 한국표준협회 회장
  • 1999년 3월 ~ 현재 : 현대자동차 회장
  • 1999년 7월 ~ 현재 : 기아자동차 회장
  • 1999년 7월 ~ 현재 : 국제양궁연맹 명예 부회장
  • 1999년 11월 ~ 2002년 12월 : 2010 세계 박람회 유치위원회 위원장
  • 2000년 9월 ~ 현재 :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2004년 9월 : 한보철강 인수
  • 2005년 1월 ~ 2010년 8월 : 동아시아재단 이사장
  • 2006년 3월 : 현대제철 출범
  • 2007년 2월 ~ 2010년 8월 : 2012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고문
  • 2007년 8월 ~ 2007년 12월 : 2012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명예 유치위원장
  • 2008년 3월 : 2012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명예 위원장
  • 2010년 8월 : 동아시아재단 명예 이사장
  • 2011년 4월 : 현대건설 인수

상훈편집

  • 1979년 11월 : 수출산업포장
  • 1981년 12월 : 새마을지도자상
  • 1985년 8월 : 철탐산업훈장
  • 1986년 12월 : 체육훈장 맹호장
  • 1989년 4월 : 체육훈장 청룡장
  • 1989년 11월 : 동탑산업훈장
  • 1996년 5월 :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
  • 1997년 5월 : 한국경영학회 한국경영자 대상
  • 1998년 3월 : 제25회 상공의 날 금탑산업훈장
  • 2001년 2월 : 올해의 자동차산업공헌상, 미국 자동차명예의 전당 미국 자동차산업 공헌상
  • 2004년 7월 : 몽골정부 북극성 훈장
  • 2004년 12월 : 2004년 자동차부문 최고의 CEO (미국 비즈니스위크 선정)
  • 2005년 7월 : 미국 오토모티브뉴스 자동차산업부문 아시아 최고 CEO
  • 2005년 10월 : 인촌기념회 산업기술부문 인촌상
  • 2005년 11월 :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인 42위
  • 2009년 6월 :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밴플리트상
  • 2010년 7월 : 미국 오토모티브뉴스 자동차산업부문 아시아 최고 CEO
  • 2011년 11월 : 미국 오토모티브뉴스 자동차산업부문 아시아 최고 CEO
  • 2011년 12월 : 미국 모터트렌드 세계 자동차업계 파워리스트 2위
  • 2012년 2월 : 국민훈장 무궁화장
  • 2012년 3월 : 이탈리아 인터오토뉴스 글로벌 최고 경영인상
  • 2012년 12월 :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세계 100대 CEO 6위

가족편집

  • 할아버지: 정봉식
  • 할머니: 한성실
    • 아버지: 정주영 (1915 ~ 2001)
    • 어머니: 변중석 (1921 ~ 2007)
      • 형: 정몽필 (1934 ~ 1982)
      • 형수: 이양자 (1943 ~ 1990)
      • 배우자: 이정화 (1939 ~ 2009)
        • 장녀: 정성이 (1962 ~ )
        • 사위: 선두훈 (1957 ~ )
        • 차녀: 정명이 (1964 ~ )
        • 사위: 정태영(테드 정) (1960 ~ )
        • 3녀: 정윤이 (1968 ~ )
        • 前 사위: 신성재 (1968 ~ )
        • 장남: 정의선 (1970 ~ )
        • 자부: 정지선 (1972 ~ )
          • 손녀: 정진희 (1996 ~ )
          • 손자: 정창철 (1998 ~ )
      • 남동생: 정몽근 (1942 ~ )
      • 여동생: 정경희 (1944 ~ )
      • 남동생: 정몽우 (1945 ~ 1990)
      • 남동생: 정몽헌 (1948 ~ 2003)
      • 남동생: 정몽준 (1951 ~ )
      • 남동생: 정몽윤 (1955 ~ )
      • 남동생: 정몽일 (1959 ~ )
      • 여동생: 그레이스 정 (1979 ~ )
      • 여동생: 엘리자베스 정 (1981 ~ )


자동차 산업 기여편집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완성차 산업을 주축으로 부품, 철강, 건설, 물류, 금융·서비스 등 그룹의 주력 분야를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낸 세계가 주목하는 경영인이다. 현대·기아차를 유례없는 단기간에 세계 5위 자동차 업체로 성장시킨 창의와 혁신의 리더십과 경영철학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필수 강의주제로 채택할 만큼 경영학의 교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정몽구 회장을 ‘세계 100대 최고 경영자’에 선정했다.

특히 생산 혁신, R&D 혁신,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혁신 등 공학과 경영을 결합한 정몽구 회장의 과감한 시도와 성취는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또한 자동차 산업과 소재, 전기, 전자, IT 분야의 창조적 융복합을 선도하고 있으며, R&D를 중심으로 미래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품질경영’ ‘현장 경영’으로 대표되는 경영철학이 대변하듯, 정몽구 회장은 품질을 중시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자동차 생산 공정과정에서 최적화된 부품 공급 모듈화 시스템을 도입, 효율성을 최대화 했으며, 전세계 균일한 고품질의 생산공장을 적기에 건설할 수 있는 표준공장 건설 시스템을 확립하였다.

정몽구 회장은 ‘쇳물에서 자동차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완비,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세계 최초로 친환경 자원순환형 사업구조를 갖춰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에 대한 책임과 지속가능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연구 역량 집적화와 고도화도 전세계 산업계가 주시한 혁신이었다. 정몽구 회장은 남양에 세계 최대 규모의 R&D센터를 설립,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여 미래 성장기반을 확보하였다. 이는 독자 엔진 개발과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 시스템, 5.0 타우엔진, 1.6 감마엔진이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만의 독자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으며, 궁극의 친환경차로 평가받는 수소연료전지차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결실을 낳았다.

해외 공장 건설 시 국내 부품업체들의 대규모 동반 진출은 사실상 현대·기아차에서 최초로 시도한 독창적 협력체계로 산업사적 의미가 지대할 뿐 아니라, 정몽구 회장의 동반성장 의지의 일환이다. 정몽구 회장은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는 통찰력과 전략적 결단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역발상 경영인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10년 10만마일’ 보증실시 승부수는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강자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정몽구 회장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전례가 없는 최단기간 내에 글로벌 생산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 현대·기아차를 내수기업에서 세계 유수의 경쟁업체들과 겨루는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세계 언론이 관용어로 사용하는 ‘현대 스피드’는 이 같은 정몽구 회장의 추진력에 대한 평가다. 그 결과, 현대차는 글로벌 브랜드 40위, 기아차는 74위를 기록하는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 품질조사기관의 신차품질 조사에서도 현대차는 일반브랜드 부문 1위를 획득했다.

정몽구 회장은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공헌 철학도 실현하고 있습니다. 사재를 출연, ‘현대차 정몽구 재단’을 설립하고, 저소득층 미래 인재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이미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 1996년 한국의 경영자상, 1998년 금탑산업훈장, 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으며, 해외에서도 2001년 자동차업계의 노벨상인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 선정 ‘자동차산업공헌상’ 수상, 2004년 미국 비즈니스 위크 ‘2004 최고경영자’, 2005년 미국 오토모티브 뉴스 ‘2005 자동차부문 아시아 최고 CEO’, 2009년 미국 벤플리트상 수상,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세계 100대 최고 경영자’, 미국 모터트렌드 ‘자동차산업 영향력 있는 인물’ 2위에 선정되었다.

이야깃거리편집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現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였다. 이후 현대자동차서비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등의 계열사에서 근무하였다. 현대정공 시절에 컨테이너 사업을 성공시켜 아버지 정주영으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그룹의 회장을 지냈다. 이후 2000년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일부 계열사를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분리하여 물려받았다.

2017년 기준 80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2세대 재벌가 사람들 중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고수하고 있다. 제네시스 신규 브랜드 및 기함급 차량 발표회엔 직접 참석하여 축하연을 진행한다든지, 현대차 남양 연구소에 수시로 내려와서 테스트카를 직접 몰아보거나(!) 주요 수정 사항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등 현대차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양궁에도 조예가 있고, 관심을 많이 두었는지, 대한양궁협회의 2대 ~ 5대 회장을 지냈다.[4] 한국양궁을 키워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미있게도 현 대한양궁협회의 회장은 그의 아들인 정의선이 맡고 있다.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아시아양궁협회 회장을 맡았고, 1993년부터 1997년까지 국제양궁협회의 부회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국제양궁협회의 명예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런 영향으로 현대차그룹에서 남녀양궁단을 운영중이다.

경복고 재학 시절 럭비부 주장 출신으로 또래 중에 가장 힘이 셌다고 한다.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과 경복고 동기로, 공부에만 열중하던 갸날픈 체구의 고교생 손병두를 불량서클 학생들로부터 고교생 정몽구가 지켜주곤 했다. 럭비부 출신이다보니 젊었을 적부터 거구에 강골을 자랑하며 팔순 고령인 지금도 어깨가 떡 벌어져 덩치가 있는 편이다. 기사에 의하면 키는 칠순 넘겼을 당시 177cm 정도라고. 나이 들어 키가 줄어드는 것을 생각하면 젊었을때는 더 장신이였을 것이다. 사실 부친 정주영(175cm)이나 형제 정몽헌(180cm), 정몽준도(182cm) 키와 덩치가 크니 집안내력이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해 군복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형제들 또한 ROTC 장교나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고 하니 최소한 병역 문제에 관한 한, 현대가는 떳떳한 셈이다.

모교인 한양대학교에 그의 이름을 딴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 건물이 2015년 들어섰다. 이름 그대로 정몽구 회장이 건설을 후원했으며, 미래자동차공학과 등이 입주했다.

현대차의 여러 비판과는 별개로 정몽구 회장의 경영 능력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정공을 성공적으로 키워 아버지에게 인정받기도 했고[5], 갈기갈기 찢어진 현대를 다시금 재계서열 2위로까지 끌어올린 공적은 확실히 무시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이 2018년들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정회장에 대한 2010년도 기사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 부인과 사별한 이후 자택 가사도우미까지 모두 남자로 교체했다는 내용이다. 부인과 사별한 상태에서 주변에 여자를 두면 혹시 모를 생길 의혹이나 구설수를 방지하기 위해 아예 차단시켜 버렸다고... 이는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여자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것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영웅시대에서는 정한용이 정몽구 회장 역할을 맡았었는데, 정한용의 외모가 정몽구와 정말 많이 닮았다.

각주편집

  1. “정몽구 인물정보”. 《조선일보》. 

외부 링크편집

전임
정세영
제3대 현대그룹 회장
1996년 1월 ~ 1998년 11월
후임
정몽헌
전임
신설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의장 (공동)
1998년 2월 ~ 2000년 3월
후임
정몽헌
전임
정몽규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1998년 12월 ~
후임
현직
전임
류종렬 (법정관리인)
기아자동차 회장
1998년 12월 ~
후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