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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씨

한국의 성씨 중 하나

제주 고씨(濟州 髙氏)는 제주도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탐라 개국설화에 등장하는 고을나(髙乙那)이다.

제주 고씨(濟州 髙氏)
Jeju Go clan family seal.svg
제주 고씨의 종문
관향제주특별자치도
시조고을나(髙乙那)
중시조고말로(髙末老)
집성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주요 인물고유정, 고자견, 고조기, 고여, 고봉례, 고득종, 고언백, 고능선, 고영희, 고영근, 고희경, 고원식, 고흥겸, 고병간, 고형곤, 고승제, 고원증, 고흥문, 고중덕, 고병현, 고은, 고병우, 고영구, 고건, 고홍길, 고흥길, 고진부, 고현철, 고두심, 고조흥, 고정식, 고광헌, 고승덕, 고영선, 고진화, 고명석(2003년)
인구(2015년)310,542명
비고탐라의 왕족

고을나(髙乙那)의 45세손인 탐라국왕(耽羅國王) 고자견(髙自堅)의 아들 고말로(髙末老)가 고려에 내조(來朝)하여 태조에게 성주(星主)·왕자(王子)의 작(爵)을 받았다.

역사편집

제주 고씨의 시조는 탐라(耽羅) 개국 설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가운데 한 사람인 고을나(髙乙那)이다. 탐라 개국설화에 의하면, 한라산 북쪽 기슭 삼성혈(三姓穴)에서 고씨,양씨,부씨 세 신인(神人)이 출현하였으며 활쏘기 시합을 해서 고씨가 이겨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제주도로 표류(漂流)해 온 상자에서 세 명의 여자, 오곡종자(五穀種子), 가축이 나와 이들과 함께 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고을나의 15세손 고후(高厚)·고청(高淸)·고계(高季) 세 형제가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耽津 : 現 전라남도 강진군)에 이르렀고, 신라에 내조(來朝)하여 고후는 성주(星主), 고청은 왕자(王子), 고계는 도내(徒內)라는 칭호를 받았다. 처음 왔을 때 탐진에 정박하였기 때문에 탐라(耽羅)라는 국호(國號)를 받았다.[1]

고을나의 45세손 탐라국주 고자견(高自堅)의 태자 고말로(高末老)가 938년(태조 21년) 고려에 내조(來朝)하여 성주(星主)·왕자(王子)의 작(爵)을 받았고, 자치를 허락 받았다. 이후 조선 초기까지 후손들이 성주의 칭호를 계승하며, 탐라국을 세습 통치하였다.

고말로의 세 아들인 고유(高維), 고강(高綱), 고소(高紹)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올라서 제주고씨가 육지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에 후손들은 고말로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시조의 발원지인 제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가문을 크게 번창시켰다.

기원편집

탐라 역사는 반만년 역사로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 출발은 고, 양, 부씨가 철기를 가지고 이주해 온 철기 문화부터이며 초기에는 고구려와만 사신 왕래를 하였고 왕이라는 뜻의 '을라'가 고구려, 부여어로 대족장 이라는 뜻이여서 삼성혈, 삼족오 처럼 3을 신성시 여기는 부여계 고구려와 같은 고씨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조선 초까지 왕위직을 유지했기 때문에 1500년 이상 왕조를 유지했다.

본관편집

제주특별자치도

관련 유적편집

제주 삼성혈(三姓穴)은 고(高)·양(梁)·부(夫) 삼신인의 탄생지로 매년 춘추제(春秋祭) 및 건시제(乾始祭)를 봉향하고 있으며,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벽랑국에서 보내온 삼공주와 혼인했다는 혼인지(婚姻址)가 지금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남아 있고 제주도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경공 고조기 묘(文敬公高兆基墓)는 고려 시대 제주인 최초로 수상에 올랐던 고조기(高兆基)의 묘로, 제주시 아라동 2464번지에 있다. 묘역에는 ‘고려중서시랑평정사(高麗中書侍郞平章事) 고조기묘(高兆基墓)’를 중심으로 좌측에 ‘유향고공지묘(留鄕高公之墓)’, 우측에 비명을 알 수 없는 묘가 배치되어 있다. 장방형 봉분의 네 귀퉁이에는 현무암 재질의 자연석을 2단으로 쌓아 올렸는데 이는 봉토 자체의 유실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묘 자체의 안정감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봉분의 정면에는 중앙에 이중 제단을 두고, 좌측에 높이 3.4m의 ‘고조기시문비(高兆基詩文碑)’, 우측에 중서시랑고조기묘비(中書侍郞高兆基墓碑)‘라는 애초의 비석도 그대로 세워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문경공 고조기 묘는 제주에서 주인공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무덤으로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새로이 이곳에 탐라원을 개설하여 옛날 탐라국 선조들의 위패를 모시고 매 해마다 종문회를 개최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주요 세거지, 현황편집

탐라국의 왕족이였던 제주고씨(濟州高氏)는 신라 경순왕과 함께 고려왕조에 귀부하면서 대체로 4세 고공익(高恭益) 대를 전후하여 관향(貫鄕)인 제주(濟州)에서 주요 왕족 많은 수가 고려의 수도인 개성(開城) ㆍ 장단(長湍) 등 경기 지역으로도 옮겨와 살게 되었고 대표적인 서울,경기도 일대의 수도권 명문 성씨로 자리 잡게 된다. 고려시대 이후로 현대까지 제주고씨 1/3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중앙 정치 명문가로 벼슬을 하면서 전국에 집성촌이 생겼으며 내부적으로 황제국을 지칭한 고려시대에는 탐라국 왕위직인 성주(星主(성을 일컫는 말이 아닌, 별성 임금주))직을 유지하며 조선 초기까지 벼슬과 함께 별도의 왕위직을 세습 하였다. 여말-조선시대에 분파한 대표 가문에는 태조 이성계의 부관으로 조선개국공신인 고여(髙呂)장군이 시조로 있는 고성군파(高聖君派)가 있다. 서울특별시 신사동과 경기도 수원시 일대 등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10세 고인단(高仁旦)의 자손들인 성주공파(星主公派)와 전서공파(典書公派)는 청주(淸州)와 서울 ㆍ 일본 등지에서 많이 살았던 사실이 ‘계해보(癸亥譜)’에 보이며, 영곡공파(靈谷公派)는 큰 아들 고태필(高台弼)의 후손들은 주로 제주도에 세거하엿으며 나머지 세아들 고태승(高台昇), 고태보(高台補), 고태익(高台翼)의 후손은 경기도 ㆍ 강원도 ㆍ 충청도 ㆍ 전라도 경상도 ㆍ 이북 5도 등지에 세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충공파(文忠公派)는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의 고조부(高祖父)인 고돈겸(高惇謙)이래로 세거해온 개성(開城)을 비롯하여 전북 ㆍ 경기 ㆍ 강원도 ㆍ 충청도 ㆍ 경상도 일원에 많이 살았으며, 그 중 일부는 19세 고종필(高宗弼) ㆍ 고몽필(高夢弼)의 대를 전후하여 황해도 연백(延白)으로 옮겨가 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개성에 있던 고돈겸(高惇謙)은 12세기 중엽에 중앙의 고위 관리로 있다가 모함을 받고 현재의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옛 옥구현]으로 유배되었으나 유배가 풀리지 않자 계속 거주하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옥구에 터를 잡고 세거하게 되었다. 후손 문충공이 고려의 명망 높은 학자로 명문가를 이루게 되었는데 ‘문충공’은 고돈겸의 현손 문충공 고경(高慶)이다. 곧, 고돈겸은 옥구에 세거한 제주 고씨 문충공파의 입향조이다. 문충공파는 고돈겸 이래로 고려 조에서만 9상서 12한림의 명현을 배출하였다.

한편 장흥백파(長興伯派)는 고중연을 시조로 하며 그 중 창평 고씨가 유명하고 장성 삼계 등 전라남도 일대에서 오랫동안 세거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

화전군파(花田君派)는 14세 고숭례(高崇禮)의 후계(後系)가 전남 구례(求禮)로 옮겨갔으며, 화전군(花田君) 고인비(高仁庇)의 9대손 고광후(高廣後)가 인조조에 이인거(李仁居)의 난을 피해 횡성(橫城)에서 영월(寧越)로 옮겨갔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 강원도와 영 ㆍ 호남 지방에 많이 살았던 것 같다.

문정공파(文禎公派)는 11세 고환(高桓)의 대 이후에 남원(南原) 등 전북지방에 많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고, 상당군파(上黨君派)는 12세 고철(高哲)이 조선 태조조에 함남 북청(北靑)으로 가 자리를 굳혔던 이래 함경도와 청주(淸州) 등지에서 세거했다고 믿어진다.

양경공파(良敬公派)는 경북 상주(尙州)와 문경(聞慶) 등지에 많이 살았던 사실이 '계해보(癸亥譜)'에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1930년경에 이르러 제주고씨(濟州高氏)는 서울 일원,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선원면(仙源面) ㆍ 불은면(佛恩面),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일원과 영월군(寧越郡) 하동면(下東面), 충북 음성군(陰城郡) 원남면(遠南面), 충남 금산군(錦山郡) 부리면(富利面), 전북 완주군(完州郡) 구이면(九耳面) ㆍ 고산면(高山面), 김제군(金堤郡) 백산면(白山面), 고창군(高敞郡) 성내면(星內面),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옥구군(沃溝郡), 정읍군(井邑郡) 고부면(高阜面),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ㆍ 주산면(舟山面) 일원 전남 광주시(光州市) ㆍ 구례군(求禮郡) 일원, 무안군(務安郡) 신안면(新安面), 광산군(光山郡) 하남면(河南面) ㆍ 대촌면(大村面),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ㆍ 고서면(高西面) ㆍ 고흥군(高興郡) ㆍ 봉래면(蓬萊面), 장성군(長城郡) 삼계면(森溪面), 신안군(新安郡) 임자면(荏子面), 여천군(麗川郡) 화정면(華井面), 경북 문경군(聞慶郡) 산양면(山陽面) ㆍ 영순면(永順面), 경남 진양군(晉陽郡) 금산면(琴山面), 제주도 제주시(濟州市), 남(南) ㆍ 북제주군(北濟州郡) 일원,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일원, 평남 용강군(龍岡郡) 삼화면(三和面), 평북 용천군(龍川郡) 용암포읍(龍岩浦邑), 그리고 함남 홍원군(洪原郡) ㆍ 북청군(北靑郡)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전남 광산군(光山郡) 대촌면(大村面)의 압촌리(鴨村里) 마을은 오늘날에도 많은 자손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바로 임진왜란 때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이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하며, 처음으로 이 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이 고경명(高敬命)의 증조인 고자검(高自檢)의 대부터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 마을에는 고경명(高敬命)의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특히 고경명(高敬命)의 다섯아들 가운데 장남인 고종후(高從厚) 및 고순후(高循厚) ㆍ 고인후(高因厚) ㆍ 고용후(高用厚)의 후예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으며, 고종후(高從厚)의 동생인 고인후(高因厚)의 후예가 옮겨가 정착한 담양군(潭陽郡) 창평리(昌平里)에 많이 살고 있다.

분파편집

주요 종파로는 성주공파(星主公派)·전서공파(典書公派)·영곡공파(靈谷公派)·문충공파(文忠公派)·장흥백파(長興伯派)·화전군파(花田君派)·문정공파(文禎公派)·상당군파(上黨君派)·양경공파(良敬公派) 등이 있다.

분적된 본관편집

고말로의 증손 고공익(高恭益)은 상당 고씨(上黨高氏), 또 다른 증손 고영신(高令臣)은 개성 고씨, 고말로의 10세손 고중연은 장흥 고씨(長興高氏), 후손 고종필(高宗弼)은 연안 고씨(延安高氏), 고말로의 23세손 고응섭(高應涉)은 안동 고씨(安東高氏)로 분적하였다.

고봉 고씨, 금화 고씨, 담양 고씨, 면산 고씨, 옥구 고씨, 용담 고씨, 의령 고씨, 청주 고씨, 토산 고씨, 회령 고씨 등도 제주 고씨에서 동원 분적된 본관이다.

항렬자편집

  • 대동항렬

인구편집

  • 2000년 100,954가구, 325,950명
  • 2015년 310,542명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 뿌리찾기운동본부 편저 (1998년 4월 25일). 《한글판 우리집의 족보》. 서울: 민중서원. 부록 9~10쪽쪽.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