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

조선족(朝鮮族, 중국어 간체자: 朝鲜族, 정체자: 朝鮮族, 병음: Cháoxiǎnzú)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한국계중국인을 일컫는 용어다. 20세기 전 간도를 비롯 조선 북방 지역에 자리 잡았거나 일제강점기 전후 새로 이주한 조선인들과 그 후손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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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朝鲜族
총인구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2,489,076
언어
한국어, 중국어
종교
무종교, 대승불교, 기독교
민족계통
한민족
기원·발상 한반도
근연민족 한민족, 야마토 민족, 만주족

조선이 20세기 초반 일본 침략으로 주권을 상실하고 간도협약으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해당 지역 조선인들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1949년 설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은 남아 있던 조선인들을 소수민족으로 규정하고 조선족이란 명칭을 부여하였다. 특히 조선족이 밀집해 있던 연변 지역은 1952년 조선족자치구(현 조선족자치주)로 지정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조선족 인구는 약 200만명으로 한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으며, 둥베이(東北, 동북) 3성(省)에 살고 있다. 다만 현대에 들어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라 취업 등을 이유로 부유한 조선족들은 베이징과 상하이, 칭다오 등과 같은 대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중국 내에서도 경제력에 따라 조선족 인구가 분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칭편집

개혁개방 이전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민족이름으로 한민족(韓民族)이라는 표현은 거의 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족'이 한민족 전체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중수교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한자문화권 중국어, 한국어(조선어), 일본어 모두에서 조선족(朝鮮族)이라는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공식 지정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중국 조선족을 의미하게 되었고, 한민족 전체를 언급할 때는 대한민국에서의 명칭 그대로 한민족(韓民族)을 사용하거나 중립성을 위해 조선민족(朝鮮民族)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역사편집

대량 이주의 시작편집

17세기 초반부터 조선인이 현재의 랴오닝성에 정착하기도 했다는 설이 있으나[1], 본격적인 이주는 대략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만주를 조상의 땅으로서 성역화하여 만주족 이외의 이주를 금지하던 청나라의 봉금(封禁)령에도 불구하고, 세도정치를 비롯한 국내의 여러 혼란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조선인들은 두만강을 건너 조선의 관권이 미치지 않는 간도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화전으로 밭을 일구거나 인삼 등을 채집하였다.

특히 1869년에는 함경도에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여 많은 조선인들이 건너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청나라조선 사이에 국경 분쟁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두만강 건너편의 조선인 거주지를 북간도라고 불렀으며 압록강 건너편의 조선인 거주지를 서간도라고 불렀다.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으로 유입하는 현상은 1885년 청나라 정부가 동북 이민 금지령을 철폐하면서 크게 증가하게 된다. 1885년부터 1910년 한일병합 이전까지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26만 명으로 추정된다.

일제 시대편집

일제강점기 동안 1910년부터 1928년까지 48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이주하였을 정도로 조선인 이주민의 수가 급증하였다. 국경을 넘은 조선인들 중에는 농민뿐만 아니라,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망명 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 1920년 6월에는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가 간도 지역에서 전개되기도 하였다.

1931년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간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부 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고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1932년에는 일본오족협화(만주족, 일본인, 한족, 몽골족, 한민족)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고, 개척을 위한 일본의 이민 정책으로 만주국으로 집단 이주하는 조선인이 더욱 증가하였다. 이 정책에 따라 재중동포의 수는 1945년에 216만 명까지 급증하였다. 이 시기부터는 간도 지역 뿐 아니라 동북 전역에 다양한 직업의 조선인이 흩어졌으며, 만주국 내에 거주하던 조선인 인구가 3백만에 달한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한국 독립 이후편집

1945년에 한국이 해방되면서, 216만 명 중 약 절반인 100만 여명은 한국으로의 귀국을 선택하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중국에 그대로 머무는 것을 선택하였다. 중국은 중국에 남은 한국인들을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규정하고, ‘조선족’(朝鮮族)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해방 이후 벌어진 국공내전(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서 중국에 남아 있던 조선의용대는 국민당을 배격하고, 토지개혁을 지지하는 공산당을 도와서 전쟁에 참여하였다. 재중동포는 새로운 중국 건설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서, 중국 공민으로서 상당한 대우를 받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고 중국 공산당은 1952년 민족구역자치실시요강을 발표한다. 이와 함께 조선족의 군사적 기여에 의한 공적으로 길림성 동부에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가 생겨났고, 53년 종전과 함께 1955년에는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에서 자치주로 격하되었다. 이때부터 조선족 출신 인사가 자치주 주장(州長)으로 취임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 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조카 마오위안신은 연변에 건너 오면서 민족 분쟁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특히 마오위안신은 홍색조반혁명위원회와 8·27 홍색반란단, 홍기전투연군, 노동자혁명위원회라는 홍위병 단체들을 조직하여 민족주의 성향의 조선족을 탄압하였고, 당시 인명피해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2]

1992년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양국의 국교 수립 이후 조선족의 대한민국 진출과 한국인의 조선족 지역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

분포편집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2017년 기준 254만 명으로 이는 재미한국인의 수에 필적하며 한반도 이외의 최대의 한민족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선족 인구 분포는 동북 지방(만주)에 집중되어 있는데, 지린성에는 약 120만 명, 지린성 동부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약 80만 명이 집중되어 있다. 그 외에 헤이룽장성(하얼빈시(哈爾濱) 등 포함)에는 약 45만 명, 랴오닝성(선양시(瀋陽) 등 포함)에는 약 25만 명, 내몽골 자치구에는 약 2천 명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베이징(北京)과 톈진(天津), 상하이(上海)와 칭다오(靑島),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등의 대도시에도 거주한다. 각지의 조선족 거주지에는 행정적으로 조선족 자치현과 여러 조선족 마을(향, 진)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동북 삼성의 중심 도시에는 조선족의 학교와 방송국, 신문사, 출판사 등이 있으며, 이들 기관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조선어를 보급하고 있다.

문화편집

종교편집

종교나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지만 조선 말기에 건너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선의 유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각종 의례 등을 통해 이를 간직해 오고 있으며 불교와 토속신앙이 결합된 신앙도 믿고 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접촉을 통해 개신교, 로마 가톨릭교회 등 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도 등장하고 있다.

언어편집

조선족의 언어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사용하는 문화어를 기준으로 삼는다. 출신지는 함경도평안도, 경상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에, 거주지역에 따라 이 지역 방언들인 동북방언, 서북방언, 동남방언이 사용되며, 중국 동북3성 각지에 이루어진 집성촌에서 다양한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

  • 동북방언(함경도)지역: 길림성 연변지구, 흑룡강성 동북부, 동남부, 두만강연안지구, 동북 육진방언
  • 서북방언(평안도)지역: 요녕성 다수지역(심양-안산-무순-본계), 요녕성과 접한 길림성 남부지역
  • 동남방언(경상도)지역: 요녕성 중부(심양), 연변지구를 포함한 길림성 일부, 흑룡강성 서북부, 서남부
  • 서남방언(전라도)지역: 요녕성 중부(심양-안산) 교차적 분포, 연변 왕청현
  • 중부방언(경기도, 충청도 등)지역: 길림성 유하현, 연변 도문시, 기타 지역 교차적 분포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박종국 (2010년 9월 20일). “中서 400년 혈통 지켜온 '번시 朴씨'. 연합뉴스. 2010년 9월 22일에 확인함. 
  2. 황희경, 문화대혁명 시기 조선족에게는 무슨 일이 Archived 2014년 2월 3일 - 웨이백 머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