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광시

종광시(鍾匡時, Zhong Kuangshi, 생몰년 미상)는 중국 당나라 말기에 활약했던 군벌로, 20여 년간 진남군(鎭南軍, 본거지는 지금의 장시성 난창 시) 번진(藩鎭)을 지배해 왔던 아버지 종전의 사후 잠시나마 해당 번진을 지배해 왔다. 종광시가 진남군 번진을 점령한 직후, 그의 라이벌이었던 군벌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본거지는 지금의 장쑤성 양저우 시) 양악은 종광시를 격파하여 그를 사로잡았고, 진남군 번진을 자신의 지배하에 편입시켰다.

종광시
Zhong Kuangshi (鍾匡時)
출생불명
중국 당나라
사망불명
광릉(廣陵, 지금의 장쑤성 양저우 시)
성별남성
경력원주자사(袁州刺史, 901년 ~ 906년)
진남군 유후(鎭南軍留後, 906년)
직업당나라 군벌, 진남군 유후(鎭南軍留後)
활동 기간901년 ~ 906년
적수양악
부모아버지 종전
배우자위전풍의 딸
친척의형제 종연규(鍾延規), 동생 종광범(鍾匡範)

생애편집

종전의 치세 동안편집

종광시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의 아버지 종전은 이전부터 일찍이 진남군 번진을 이미 점령해 오다가, 882년에 절도사로 임명되었다.[1] 종광시에 대한 사서(史書) 최초의 기록은 901년에 있었다. 당시 종전은 무주자사(撫州刺史, 지금의 장시성 푸저우시) 위전풍을 공격하여 무주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 후, 위전풍이 종전의 지휘를 따르기로 동의하면서 화평을 청했을 때, 그는 자신의 딸을 종광시에게 시집보내 평화를 다짐하였다.[2]

짧았던 지배편집

종전은 906년에 사망하였다. 장병들은 종광시를 유후(留後)로 추대하여 그의 뒤를 잇게 하였다. 이와 동시에, 종전의 양자인 강주자사(江州刺史, 지금의 장시성 주장 시) 종연규(鍾延規)가 자신이 종전의 뒤를 잇지 못한 데 앙심을 품고, 회남절도사 양악에게 항복의 사자를 보냈다. 양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장군인 승주자사(昇州刺史, 지금의 난징) 진배(秦裴)를 서남행영도초토사(西南行營都招討使)로 삼아 진남군을 치게 하였다. 진배는 종광시의 장수 유초(劉楚)를 격파하여 그를 사로잡았고, 이어 진남군의 본거지인 홍주(洪州)를 포위하였다.[3] 그는 곧 그곳을 함락시키고 종광시와 그의 사마(司馬) 진상(陳象) 등 5천 명의 장병들을 사로잡아, 그들을 회남 번진의 본거지인 양주(揚州)로 압송하였다.[3][4] 양악은 자신이 진남군 절도사를 겸임하였으며, 동시에 진배를 홍주제치사(洪州制置使)로 삼았다.[3]

종광시와 진상이 양주로 압송되어 오자, 양악은 종광시에게 왜 일찍 투항하지 않았느냐고 꾸짖었다. 종광시는 머리를 조아리고 죽여 달라고 청했다. 양악은 그에게 자비를 베풀고 목숨을 살려준 반면, 진상을 처형하였다. 이후 종광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면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4]

출전 및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