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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명(崔椿命, ? ~1250)은 고려 고종 때 침입한 몽골군을 맞아 싸운 고려의 무인이다. 본관은 해주최충의 후손이다.

생애편집

1231년(고종 18년) 몽골의 제1차 침입 당시 자주성의 부사로써 성을 포위한 몽골군에 맞서 항전했다. 자주성이 거세게 저항하자 몽골군은 자주성을 포기한 채 남하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몽골군을 기습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큰 피해를 입고 잠시 물러났던 몽골군이 재차 자주성을 공격했지만 강력한 저항에 막혀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1231년 12월, 살리타이가 이끄는 군대가 개경을 포위하자 고려 조정은 몽골군에게 항복하고 송국첨을 보내 최춘명에게도 항복할 것을 권유했으나 최춘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춘명이 계속 항복을 거부하자 살리타이는 항복 사절로 온 회안공 왕정에게 최춘명의 항복을 독촉케 했다. 왕정은 대집성을 사신으로 보내 최춘명의 항복을 권고했다. 하지만 최춘명은 화살을 쏘아 대집성을 내쫓고 항복 권유를 거부했다. 결국 몽골군은 최춘명과 자주성의 항복을 받지 못한 채 1232년(고종 19년)에 몽골로 돌아갔다.

몽골군이 돌아간 이후 최고권력자인 최우와 그의 장인인 대집성은 항명죄를 이유로 최춘명을 처형하려 하였다. 하지만 몽골 관리의 만류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군복을 벗고 양민으로 생활하다가 강화천도강화도로 옮겨갔다. 1239년(고종 26년) 경상도 안찰사로 관직에 복귀한 이후 추밀원부사를 역임했다. 1250년(고종 37년) 강화도에서 사망하였다.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