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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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국(페르시아어: جوجي‎ اولوس Ūlūs-i Jūchī)(페르시아어: مملكت اوزبك Mamlakat-i Ūzbak[1], 아랍어: بلد أوزبك Balad Ūzbak[*][2], 바르카 지방(페르시아어: دشت بركه Dasht-i Barka[3]), 알탄 오르도(Altan Ordo) 또는 킵차크 칸국몽골 제국이 분열된 후에 생긴 4대 칸국 중 하나이다. 킵차크 칸국의 동유럽 정복에 의해 루스인들은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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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
주치국
جوجي‎ اولوس

 

 

1240년대 ~ 1502년
 

 

 

국기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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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라이
정치
정부 형태군주제

1226년 ~ 1280년
1242년 ~ 1255년
1379년 ~ 1395년

오르다(백장 칸국)
바투(청장 칸국)
토크타미시(백장 칸국)
국성보르지긴
입법쿠릴타이
지리
위치동유럽
1310년 어림 면적6,000,000 km2
인문
통용어몽골어, 킵차크어
지배층몽골인
피지배층루스인, 쿠만인, 킵차크인, 타타르인

종교
국교이슬람교(사실상)
종교텡그리교
유대교
동방 정교회
기타
현재 국가몽골 몽골
러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성기편집

제3대의 베르케 칸에서 제9대 우즈베크 칸까지가 전성기였다.

알루구의 공격을 받은 카이두는 알탄 오르드 울스의 베르케의 지원을 받아 차가타이 칸국의 영토로 침입하여 알루구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다음 번 전투에서 반격을 당해 본국으로 철수했다.

차가타이의 칸이 바락으로 교체되자 카이두는 다시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 카이두는 알탄 오르드 울스의 만그 티무르의 지원을 받아 차가타이 칸국을 침입하여 시르다라강 근처와 코잔드에서 벌어진 두 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두 번의 전투에서 패한 바락은 트란속시아나로 도망친 뒤 사마르칸트부하라에서 군대를 다시 모았다.

바락의 격렬한 저항으로 전쟁이 장기화될 기미를 보이자 카이두는 배후의 쿠빌라이가 침입해올 것을 염려해 바락과 강화를 체결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강화의 결과 카이두만그 티무르가 트란속시아나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됐으며 카이두는 차가타이 칸국이 소유하고 있던 투르키스탄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카이두는 강화대로 이 땅을 만그 티무르에게 주지 않고 자신의 영토로 병합시켰다.

강화는 체결되었지만 바락은 이 강화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부하라사마르칸트를 침공하려고 했다. 카이두는 바락의 이러한 불만을 이용하여 바락에게 아바카가 다스리고 있는 일 한국을 공격할 것을 종용했다.

바락일 한국을 공격하라는 제의에 쉽게 응하여 일 한국을 공격할 준비에 나섰다. 이에 카이두는 자신의 아들인 차파르가 이끄는 군대를 지원했으며 킵차크 한국 역시 군대를 지원했다. 킵차크 칸국과 카이두의 지원을 받은 바락은 아바카 휘하의 장수인 테구데르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한 뒤 군대를 일으켜 호라산에서 일 칸국의 군대를 격파했다.

하지만 알탄 오르드 울스과 카이두는 바락의 성공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이 때문에 킵차크 한국 군대는 바락 휘하의 장군인 잘라이르타이(Jalayirtai)와의 언쟁을 구실삼아 군대를 퇴각시켰다. 바락은 잘라이르타이를 보내 킵차크 한국 군대에 용서를 구하고 복귀할 것을 설득했지만 허사였다. 킵차크 한국의 군대가 떠나자 카이두가 보낸 차파르 역시 자신의 군대를 버리고 본국으로 도망가버렸다.

일 한국츄판 왕조는 1357년에 킵차크 한국의 10대 자니 벡 칸의 침략에 의해 멸망당했고 마렉 아시라프는 킵차크 한국군에 잡혀 처형당했다.

추판 조의 영토를 정복한 킵차크 한국은 통치의 어려움을 직감하고 1년 뒤인 1358년에 최종적으로 철수했으며 이 땅은 2년 뒤인 1360년에 자라이르 왕조우웨이스 1세의 손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마렉 아시라프의 아들인 티무르타스(Temurtas)도 사망하여 이후 추판 왕조의 존재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킵차크 칸국은 루스인들을 지배하면서 모스크바 대공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모스크바 대공국이 모든 루스 제공국들의 세금을 바쳐오게 하였다. 또한 반란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하지만 루스 측의 반격도 간헐적으로 있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 시절인 1380년 쿨리코보의 전투에서 모스크바는 유일하게 킵차크 칸국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킵차크 칸국의 반격으로 다시 정복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은 1380년부터 1세기 뒤에 이루어졌다.

쇠퇴와 멸망편집

14세기 말부터 1440년대에 킵차크 칸국의 타타르 귀족들은 모스크바 대공이 모스크바 칸으로 인정되면서 귀족들간 결혼으로 루스화되어 점차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크림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카잔 칸국, 시비르 칸국으로 나뉘었으며 이들도 크림 칸국을 제외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 대공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킵차크 칸국의 칸편집

  1. 바투 칸(Батый) (1237-1256)
  2. 사르타크 (1255-1256)
  3. 울라크치 (1256?)
  4. 베르케 칸(Берке) (1256?-1266)
  5. 멩구티무르 칸(Менгу-Тимур) (1266-1280) (크림 한국을 지배함)
  6. 투다멩구 칸(Туда-Менгу) (1280-1287)
  7. 탈라부가 칸(Талабуга) (1287-1291)
  8. 토흐타 칸(Тохта) (1291-1312)
  9. 우즈베크 칸(Узбек) (1312-1342)
  10. 자니베크 칸(Джанибек) (1342-1357) (1356년에 아제르바이잔이란을 지배함)
  11. 베르디베크 칸(Бердибек) (1357-1361)
  12. 마마이 칸(Мамай) (1362-1380)
  13. 토크타미시 칸(Тохтамыш) (1380-1395)

백장 칸국편집

주치의 맏아들 ‘오르다’의 백장 칸국의 칸은 다음과 같다.

청장 칸국편집

청장 칸국의 칸은 다음과 같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V. Tizengauzen, Sbornik materialov, otnosiashikhsia k istorii Zolotoi Ordy, t. 2, p. 93
  2. V. Tizengauzen, Sbornik materialov, otnosiashikhsia k istorii Zolotoi Ordy, t. 1, pp. 343~343, 348, 350.
  3. V. Tizengauzen, Sbornik materialov, otnosiashikhsia k istorii Zolotoi Ordy, t. 1, p. 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