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태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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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세조 태무황제 탁발도(魏 世祖 太武皇帝 拓跋燾, 408년 ~ 452년 3월 11일(음력 2월 5일))는 중국 남북조 시대 북위의 제3대 황제(재위: 423년 ~ 45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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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태무제
魏 太武帝
지위
북위의 제3대 황제
재위 423년 12월 27일 ~ 452년 3월 11일
즉위식 태상(泰常) 8년 11월 9일
(423년 12월 27일)
전임 명원제(明元帝)
후임 남안은왕(南安隱王)
북위의 황태자
재위 422년 6월 6일 ~ 423년 12월 27일
즉위식 태상(泰常) 7년 5월 1일
(422년 6월 6일)
후임 경목태자(景穆太子) 탁발황(拓跋晃)
이름
탁발도(拓跋燾)
별호 탁발불리벌(拓跋佛狸伐)
연호 시광(始光) 424년 ~ 428년
신가(神䴥) 428년 ~ 431년
연화(延和) 432년 ~ 435년
태연(太延) 435년 ~ 440년
태평진군(太平眞君) 440년 ~ 451년
정평(正平) 451년 ~ 452년
시호 태무황제(太武皇帝)
묘호 세조(世祖)
능호 운중금릉(雲中金陵)
신상정보
출생일 천사(天賜) 5년(408년)
사망일 정평(正平) 2년 2월 5일
(452년 3월 11일) (43 - 44세)
부친 명원제(明元帝) 탁발사(拓跋嗣)
모친 밀황후(密皇后) 두씨(杜氏)
배우자 태무황후(太武皇后) 혁련씨(赫連氏)
경애황후(敬哀皇后) 하씨(賀氏)

생애편집

태무제는 호하, 북연, 북량을 차례로 멸망시켜 439년에 화북을 통일하였다.

태무제는 내정을 정비하면서 남조 유송에 대한 공격을 개시해 회남과 강북을 빼앗았다. 탁발도의 유송 원정에 많은 한족들이 학살되었고 한족들의 처자식들이 사로잡혔 끌려갔다. 이때 도사 구겸지가 북위에서 도교를 확립하고 한족 출신 관료 최호와 손을 잡아 태무제에게 진언하여 폐불을 단행하게 하였다.(삼무일종의 폐불 첫 번째) 이 시기에 소수 한족 출신 관료들이 활동하면서 선비족 지배층들은 불만이 생겨 서서히 북위 내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최호는 피지배층이던 한족 출신 관료를 등용하기 시작하였다.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한족화로 인해 선비족들의 반발을 받았으며 한족들이 역사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태무제 탁발도를 직설적으로 평가한 것 때문에 450년에 태무제는 최호와 한족 출신 관료들을 전부 숙청•처형하였고 그 일가친척들은 노비로 만들었다. 선비족들은 한족들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였고 극소수의 피지배층 한족들만이 등용되었다. 용장엄혹(勇壯嚴酷)하다는 태무제 역시 452년에 환관에게 독살당했다.

이후 4대 문성제의 황후이자 5대 헌문제의 적모인 문명태후가 혼란을 수습하고 466년 헌문제를 옹립해 수렴청정을 시작했다.

가계도편집

  • 황후 : 태무황후 혁련씨(太武皇后 赫連氏, ?~453)
  • 황후(추존) : 경애황후 하씨(敬哀皇后 賀氏, ?~428)
    • 제1황자 : 경목태자 탁발황(景穆太子 拓跋晃, 428~451) - (경목제로 추숭)
  • 후궁 : 좌소의 풍씨(左昭儀 馮氏)
  • 후궁 : 좌소의 여씨(左昭儀 閭氏)
    • 제6황자 : 남안은왕 탁발여(南安隱王 拓跋余, ?~452)
  • 후궁 : 우소의 저거씨(右昭儀 沮渠氏, ?~447)
  • 후궁 : 부인 욱구려씨(夫人 郁久閭氏)
  • 후궁 : 귀인 혁련씨(貴人 赫連氏) - 황후의 동생
  • 후궁 : 귀인 혁련씨(貴人 赫連氏) - 황후의 동생
  • 후궁 : 초방 월씨(椒房 越氏)
    • 제2황자 : 진왕 탁발복라(晉王 拓跋伏羅, ?~447)
  • 후궁 : 초방 서씨(椒房 舒氏)
    • 제3황자 : 동평왕 탁발한(東平王 拓跋翰, ?~452)
  • 후궁 : 초방 불씨(椒房 弗氏)
    • 제4황자 : 임회선왕 탁발담(臨淮宣王 拓跋譚, ?~452)
  • 후궁 : 초방 복씨(椒房 伏氏)
    • 제5황자 : 광양간왕 탁발건(廣陽簡王 拓跋建, ?~452)

기년편집

각주편집

전 임
명원제 탁발사
제3대 북위의 황제
423년~452년
후 임
남안은왕 탁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