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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백씨(泰仁 白氏)는 전라북도 정읍시(全羅北道 井邑市)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백석순(白碩淳, 石淳)이다.

태인 백씨 (泰仁 白氏)
관향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시조 백녹승(白祿承)
주요 중시조 백석순(白碩淳)
주요 집성촌 의주군 고성면 대산동 (義州郡 古城面 坮山洞)
주요 인물 백광언 백사림 백용서 백아연 백예린 백광종 백광조

백관묵 백철

인구(2015년) 1,228명

목차

역사편집

태인(泰仁)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일대이다.

태인 백씨(泰仁白氏)의 시조 백석순(白碩淳, 石淳)은 조선시대 초기에 사과(司果)를 지냈다고 한다. 귀시(貴時)의 아들로 간미(簡美)의 5자 경신(景臣)의 후손이다. 태인 백씨(泰仁白氏)는 해미 백씨에서 분적하였다.

조선조 초에 석순의 조부인 녹승(祿承)이 정언(正言)을 지내고 해미(海美)에서 태인(泰仁)으로 이거하여 태인을 본관으로 삼았다. 석순은 의주(義州)로 서천(西遷)하여 후손들이 주로 의주에 대대로 세거하였다.[주 1] 석순의 손자 용서(龍瑞)는 임란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통훈(通訓) 증호참(贈戶參)이며, 증손인 거간(居簡)의 아들 광종(光宗)과 거의(居易)의 아들 광조(光祖)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 공을 세우고 모두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

태인 백씨는 조선조 들어서 창관된 성씨로서는 매우 많은 무인들을 배출한 무관 집안이다.

본관 연혁편집

태인(泰仁)은 전라북도 정읍시(井邑市) 태인면(泰仁面)이다.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을 합쳐서 생긴 이름이다.

  • 태산(泰山)은 본래 백제의 대시산현(大尸山縣)인데, 663년(풍왕 3) 대산(帶山)으로 개칭되어 고사주(古四州)의 영현(領縣)이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신라가 대산(大山)으로 고쳐 전주도독부(全州都督府) 관내 군으로하고 , 정읍현, 빈성현(斌城縣),야서현(野西縣)을 관장하였다. 태산(太山), 태산(泰山) 등으로도 불리었다.
  • 인의(仁義)는 백제 때 빈굴양(賓窟壤)이었는데, 빈성(斌城), 부성(賦城), 무성(武城)등으로 불리다가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빈성으로 고쳐 대산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940년(고려 태조 23)에 인의현(仁義縣)으로 고쳤다.

고려시대에 두 현은 고부군의 임내(任內)였으며, 1354년(공민왕 3)에 대산군을 태산(泰山)으로 고치고 감무(監務)를 두어 인의현을 편입하였다가 곧 분리하였다.

1409년(태종 9)에 태산(泰山)과 인의(仁義)를 합하여 태인현(泰仁縣)이 되었고, 현의 치소를 거산역(居山驛)으로 옮겼으며, 1413년에 현감을 두었다. 임내였던 능(綾), 나향(羅鄕)과 대곡(大谷), 개문(開門), 도전(桃田) 부곡은 조선 초기에 직촌(直村)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全州府) 태인군(泰仁郡)으로 승격되었고, 이듬해에는 전라북도에 속하였으며, 1914년정읍군 태인면이 되었다. 1995년에는 정읍군과 정읍시가 통합되어 정읍시가 되었다.

인물편집

과거급제자편집

무과

백광척(白光倜) 백형길(白亨吉) 백시엽(白時燁)

진사

백관묵(白寬默)

인구편집

  •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태인 백씨는 156가구 총 485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태인 백씨는 ?가구 총 1,22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해편집

  1.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배천(白川)에서 덕천(德川)으로 입향한 공(贛)의 후손들 중 덕천에서 의주(義州)에 이르기까지 산거한 백씨들(배천 백씨)과는 뿌리가 다르다.
  2. 한단고기(桓檀古記)의 원저자인 계연수에게 원동중의 『삼성기』(三聖紀)를 전한 '태천 백진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