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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신라)

(태조 성한왕에서 넘어옴)

성한(星漢, ? ~ ?) 또는 김성한(金星漢)은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로 추정되는 인물로, 성한왕(星漢王), 또는 태조 성한왕(太祖 星漢王)이라고 한다. 세한(勢漢), 열한(熱漢)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문헌 사료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금석문에서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로 나타난다. 묘호는 태조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금석문에 의하면 그는 문무왕김인문의 15대조, 흥덕왕의 24대조라 한다. 그밖에 신라 말기의 승려 진공진철의 묘비에도 그를 시조로 비정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서화가 추사 김정희는 성한 또는 세한이라 불리던 인물과 김알지를 동일인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생애편집

성한의 출생 년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출생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성한은 문무왕릉비, 김인문묘비명, 흥덕왕릉비, 진철대사탑비문(眞澈大師塔碑文),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 및 石棺)등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금석문에 따르면, 성한은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격으로 나타나며, 태조(太祖)라고 호칭되기도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성한이 아닌 김알지를 김씨의 시조로 서술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금석문 속에서는 김알지가 등장하지 않고 성한을 김씨 왕실의 시조로 지칭한다. 신라 김씨는 박혁거세 대신 성한을 태조라 칭하였고,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그를 김알지의 아들로 기술하였지만 신라 당대인들은 성한을 시조로 보았다. 이에 따라 성한의 정체에 대하여 많은 주장이 있어왔다.

문무왕릉비, 김인문묘비, 진철대사탑비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 및 石棺), 흥덕왕릉비문 등에는 모두 성한이 김씨 왕실의 시조로 되어 있다. 문무왕릉비문에는 성한을 태조(太祖)라 하고, 성한왕이 가계상 문무대왕의 15대조라 하며[1], 흥덕왕릉비문에도 성한을 태조라고 지칭하는 한편, 흥덕왕은 그의 24대손이라 하였다.

한편 경주김씨나 신라 김씨의 족보 및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미추왕편에는 세한 또는 성한의 최종 벼슬이 이찬이었다는 것만 간략하게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성한을 김알지와 동일 인물로 보는 견해[2],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알지의 아들로 등장하는 세한(勢漢) 또는 열한(熱漢)으로 보는 견해[3], 알지의 7세손으로 김씨 중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왕(味鄒王)으로 보는 견해[4] 등이 있다. 경주 김씨 세보에는 세한(勢漢)으로 기록되어 있고, 다른 이름으로 열한(熱漢), 성한(星漢), 성한(聖漢) 등의 이름이 있다고 전해진다.

한편, 문무왕 비문에 따르면, 성한은 투후 김일제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5행),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6행)라는 두 구절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여 투후 김일제의 7대손을 성한이라 비정하기도 한다.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김일제의 후손들이 중국에서 패망하여 신라로 이주하였다고 주장하며, 그 상세한 과정을 소개하기도 한다.[5]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김일제와 관련된 기록은 신라 왕족의 관념적인 시조의식의 소산으로 보고 있다. 전근대에는 가계를 신성시하기 위해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 또는 유명한 위인들을 시조로 간주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김일제 후손설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6][7]

사망 연대와 날짜는 미상이고, 능지와 시호에 대한 것도 미상이다.

가족 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관련 서적편집

  • 김씨의 뿌리(상, 중, 하)(강준식)
  • 한국 7대 불가사의(이종호, 역사의아침, 2007)
  • 천년의 왕국 신라(김기흥, 창비(창작과비평사), 2000)
  • 씨성으로 본 한일민족의 기원(김성호, 푸른숲, 2000)
  • 주제별로 풀어쓴 한국사 강의록(고대편)(김기섭, 가람기획, 1998)

각주편집

  1. 문무왕릉비 사실상 다 찾은 셈 경향신문 2009.09.03
  2. 추사 김정희(조선 후기)의 견해 / 今西龍, 〈新羅文武王陵碑に就きて〉, 《藝文》, 1933.
  3. 前間恭作, 〈新羅の世次と其名につきて〉, 《東洋學報》, 1925.
  4. 김창호, 〈신라 태조성한의 재검토〉, 《역사교육논집》5호, 1983.
  5. 한국 7대 불가사의(이종호, 역사의아침, 2007) 108쪽.
  6. 김창호, 〈문무왕릉비에 보이는 신라인의 조상인식 - 태조성한의 첨보 -〉, 《한국사연구》, 한국사연구회, 1986년.
  7. 문경현, 〈신라건국설화의 연구〉, 《대구사학》, 대구사학회, 1972년.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