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의열단

마지막 의견: 5년 전 (고려님) - 주제: 자꾸 추가되는 기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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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추가되는 기에 관해 편집

이건 의열단의 후신인 조선민족혁명당의 기일 뿐 의열단의 기는 아니지 않나요? 출처라고 제시된 링크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가 없는데요. 혹시 제가 못 찾는 거라면 누가 좀 찝어서 인용 좀 해 주셔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8년 10월 14일 (일) 14:22 (KST)답변

김원봉과 이청천의 주도권 경쟁은 1936년 7월 1일자 『민족혁명』3호에 게재된 ‘의열단기(義烈團旗) 문제’를 발단으로 표면화되었다.

이는 의열단 계열 지도부에서 이청천 계열과의 사전 협의없이, 이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사용하던 義烈團旗를 민족혁명당 깃발로 독단 게재한 사실을 가리키는데, 이는 당 운영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던 의열단 계열의 독주를 대변하는 대표적 사례였다.

--고려 (토론) 2018년 10월 14일 (일) 14:23 (KST)답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사용하던" 이라고 하는데 해당 학교는 1932년에 설립되었고 의열단은 1928년에 해산했습니다. 이름은 "의열단기"라고 지칭되었지만 의열단계열이 세운 조선혁명간부학교의 교기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8년 10월 14일 (일) 14:28 (KST)답변
의열단의 단장이던 김원봉이 만든 집단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였는데 해당 출처에서도 의열단기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의열단의 깃발로도 쓰였다고 보는게 즉 의열단 - >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 조선민족혁명당에 독단 기재로 보는 것이 더 맞지 않나싶습니다.--고려 (토론) 2018년 10월 14일 (일) 14:31 (KST)답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 조선민족혁명당"은 동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으나, "의열단 ->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8년 10월 14일 (일) 14:35 (KST)답변
하지만

『민족혁명』은 昭和 11년 1월 20일 창간인데, 그것은 昭和 10년 10월 1일부터 발행되고 있던 『黨報』를 제목을 바꾼 것이다. 그 후 소화11년 7월 1일호에서 民族革命黨旗로서 義烈團旗를 그대로 채용한다는 것을 발표하였기 때문에 그것에 발단이 되어 김원봉파와 이청천파의 표면적 항쟁이 되었다.그 후 같은 해 7월 31일부터 같은 해 8월 29일까지는 『우리의 길』이라 제목을 바꾸었고 그 후 폐간이 되었는데, 같은 해 12월 1일의 전당대회 결의에 의해 소화12년 2월 22일부터 『前途』라고 개칭되어 발간을 부활하였다.

서술을 보면 의열단기는 맞다고 봅니다.--고려 (토론) 2018년 10월 14일 (일) 15:06 (KST)답변

실제로 의열단에서 사용되었는지, 의열단 해산 이후 교기로 사용하면서 학교 주축이 의열단계였기에 편의상 의열단기로 불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와 조선민족혁명당의 기라는 것입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8년 10월 14일 (일) 16:25 (KST)답변
저는 "民族革命黨旗로서 義烈團旗를 그대로 채용한" 기록을 가져오셨는데 그 신뢰성이 의심스럽다면 다른 근거가 있스니까. 그리고 의열단이 해산된 것은 민족혁명당이 창립되는 대략 36년경이니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사용하던"라는 표현에도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고려 (토론) 2018년 10월 14일 (일) 16:51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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