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마누엘 칸트

마지막 의견: 1년 전 (InternetArchiveBot님) - 주제: 외부 링크 수정됨 (2022년 12월)

아흔님의 의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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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A-heun) 2004년 6월 23일 (水) 15:39 (UTC)

임마누엘:표제어 편집

'이마누엘'인가요? 제가 도서관에서 빌린 순수이성비판의 저자는 임마누엘 칸트이고 검색도 임마누엘이 더 많이 나오는데요. --Acepectif 2008년 3월 7일 (금) 01:01 (KST)답변

그러니까요. '임마누엘'이 더 많이 쓰이니까 임마누엘 칸트로 표제어 변경을 했으면 합니다.Yknok29 (토론) 2009년 7월 12일 (일) 01:30 (KST)답변
글쎄요. 독일어 표기는 '이마누엘' 아닌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09년 7월 12일 (일) 01:32 (KST)답변
정말요? 독일어를 할 줄 아시는 분이 확실히 답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국내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 받으신 김석수 박사의 책에도 임마누엘로 나오는데.... 궁금합니다.Yknok29 (토론) 2009년 7월 12일 (일) 01:34 (KST)답변
그런데 뒤져보니 이마누엘이라고 되어있는 책도 상당합니다. 보아하니 조금 윗세대에선 임마누엘을 주로 썼으나 2000년대 넘어오면서 이마누엘을 주로 쓰던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09년 7월 14일 (화) 08:40 (KST)답변
그런가요? 2006년에 출간된 칸트 책인 서울대 백종현 교수 번역본 책소개에는 '임마누엘'로 되어있습니다. 이 교수님은 독일어를 아시는 분임이 분명하구요. 이마누엘이 영어 발음이고, 임마누엘이 독일어 발음이라면, 임마누엘을 써야 맞다고 봅니다. 2000년대 이후 책을 제가 더 찾아보겠습니다.Yknok29 (토론) 2009년 7월 14일 (화) 08:57 (KST)답변
영어 발음으로는 임매뉴얼, 즉 임마누엘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09년 7월 14일 (화) 08:58 (KST)답변
그럼 독일어, 영어 모두 임마누엘인듯 합니다. 네이버 책 검색 결과로는 임마누엘이 422건, 이마누엘이 118건 나오네요...Yknok29 (토론) 2009년 7월 14일 (화) 09:00 (KST)답변
윤성현씨의 주장은 임매뉴얼 =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까? 또 위에서는 Immanuel의 독일어 표기가 '이마누엘'이 아니냐고 혼자 추측하였습니다. 본인이 모르는 것에 의견을 제출하고나 있지 않은지 재고하셨으면 합니다. --칸티아너 (토론) 2009년 7월 17일 (금) 10:18 (KST)답변

임마누엘은 옛 관례적 표기로 보입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mm-"을 "ㅁㅁ"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m-"과 "-mm-"의 발음이 다르지도 않고요. 국립국어원 용례집에 따라 이마누엘 칸트로 다시 옮겼습니다. -- ChongDae (토론) 2009년 8월 12일 (수) 18:48 (KST)답변

알겠습니다. 제가 잘 모르고 괜히 이동을 시켰네요. 죄송합니다.Yknok29 (토론) 2009년 8월 12일 (수) 22:27 (KST)답변
국어원 표기가 영어 표기를 준용하다보니 이런 점은 특히 맘에 안드네요. Plinio (토론) 2009년 8월 15일 (토) 18:10 (KST)답변

'임마누엘 칸트'가 맞습니다. [1] --토트 2015년 2월 13일 (금) 22:48 (KST)답변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용례 표기 검색결과 이마누엘은 결과가 전혀 없고 임마누엘 검색시에만 결과가 나옵니다. 과거와 달리 국립국어원에서도 임마누엘이라고 표기하는 것 같습니다. Deokbae0111 (토론) 2017년 5월 29일 (월) 07:20 (KST)답변

오성: 일본식 번역, 지성: 한국식 번역 편집

《기존의 칸트 저서 번역서들은 일본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중역본이서 일본의 예를 따라 "오성"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칸트 저서를 번역한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 페어슈탄트(Verstand)를 오성(悟性)으로 옮긴 것은, 일본의 경우 오(悟)라는 한자에 '안다'는 의미도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오(悟)가 '깨닫다'는 뜻으로 쓰이므로, 오성보다 지성(知性)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언급했다. [9] 김석수도 순수이성 비판 서문의 번역에서 Verstand를 지성으로 옮겼다. 김석수에 따르면, 칸트에게 'Verstand'란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능력보다는 감성을 통해 주어진 내용을 분류,정리,통일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위의 주석이 단지 참고 사항이라면 좋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단 두 명의 철학교수의 번역 '지성'이 바른 것이라고 암시를 한 것이라면 과장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오성과 마찬가지로 지성이라는 말 자체도 철학적 용어 Verstand의 번역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백종현 교수가 독일 유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분의 한국어 번역이나 해석이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칸티아너 (토론) 2009년 7월 17일 (금) 10:11 (KST)답변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위의 주해는 단지 참고 사항입니다. 본문에서는 "지성(Verstand:오성)"으로 두 번역어를 모두 표기하였습니다. 또한 백교수의 언급도 오성보다 지성이 상대적으로 정확하다는 뜻이지, 페어슈탄트와 1:1로 직역할 수 있는 용어가 지성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참고로 제가 두 분의 언급을 표시한 것은 두 분 모두 한국칸트학회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칸트 전문가들 사이에서 페어슈탄트의 한국식 번역어로 '지성'을 쓰면 좋겠다는 의견의 흐름이 있다는 점을, 위키 사용자들에게 알려주려는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페어슈탄트를, 오성으로 알고 있고 많은 책에서 오성으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의견에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문제가 있으면 토론 페이지를 통해 바로바로 지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Yknok29 (토론) 2009년 7월 17일 (금) 10:30 (KST)답변

기존 편집에 대한 대책 없는 의문 편집

  • 기존 편집이 활동하지 않는 사용자나 IP 사용자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 또한 누가 한 편집인지 정확히 파악이 안되는 경우에 사용자의 토론에서 답을 기대하기 힘들어 이곳에 남깁니다.
  1.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좋아(gut)"라고 전해진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이제 되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독일어 gut가 무슨 의미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완료 gut는 good 좋다는 뜻이 맞네요..Yknok29 (토론) 2009년 8월 3일 (월) 15:34 (KST)답변
  2. "합리주의의 방식은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칸트가 지적한 합리주의의 문제점은 감각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주장을 펴서 상상의 세계에 까지 논의를 확장시킨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장에서 "지식"과 "확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칸트에게 지식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술어가 주어에 일부 포함되어 있는 "분석판단"인데, 위 문장은 '합리주의=분석판단'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듯 하다는 것입니다. 이 전제가 정확한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어서 적어 놓습니다.
     완료 용어에 대한 혼란이 있었습니다. 책을 뒤져본 결과, '합리주의-연역법-분석판단'이 연결되고, '경험주의-귀납법-종합판단'이 연결되네요. 본문에 출처를 보강해 기록합니다.Yknok29 (토론) 2009년 8월 3일 (월) 16:39 (KST)답변
  3.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경험과 맞아 떨어지는 '선천적 종합판단' 을 긍정하였다.":이 문장에 대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a priori"라는 용어의 한국어 번역이 "선천적", "선험적" 두 가지가 있으므로 둘 다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위 문장은 선천적으로 적으면서, 칸트가 말하는 'a priori 종합판단'이 경험과 맞아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런 언급은 매우 곤혹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칸트는 우리의 사유가 경험의 영역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경험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선험적" 이라는 말이 말 그대로 경험에 앞서는 것인데, 경험에 앞서는 인식 형식에 의한 판단이 어떻게 경험과 맞아 떨어질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1+1=2 의 경우, 경험과 맞아 떨어진다고 주장하시기 쉽지만, 알코올 1L와 물 1L를 합치면 부피가 2L가 되지 않으므로 경험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습니다.Yknok29 (토론) 2009년 8월 3일 (월) 14:04 (KST)답변
     완료 "경험과 맞아 떨어지는"을 "인식을 확장하는"으로 바꾸었습니다.Yknok29 (토론) 2009년 8월 3일 (월) 17:14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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