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라 이븐 알무카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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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라 이븐 알 무카파''' ({{llang|fa|ابومحمد عبدالله روزبه بن دادویه}}, {{llang|en|Ibn al-Muqaffaʿ}},
[[우마이야
또 다른 삼촌 [[압둘라 븐 알리]](Abdullah bn 'Ali)가 칼리프 알 만수르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형제인 이사와 술라이만(Sulaiman)에게 피신했다. 알 만수르가 이들에게 압둘라 븐 알리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자 서기로 일하던 이븐 알 무카파는 알 만수르를 모독하는 글로 압둘라의 신변 보장 각서를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알 만수르는 자신의 정적을 비호하던 이븐 알 무카파를 제거할 기회를 노렸다. 결국 이븐 알 무카파는 조로아스터교 사상을 이슬람에 전파한 이단자로 낙인이 찍혀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이븐 알 무카파는 우마이야 시대에 팽배했던 아랍인 우월주의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압바스 시대에도 그는 정치적으로 시아파를 지지하면서 페르시아 개혁 운동에 동참했다. 그는 페르시아의 문학과 정치제도, 역사 등을 아랍어로 옮기면서 사회 개혁을 주창했다. 폭력으로 정권을 세운 압바스 왕조를 목격했던 이븐 알 무카파는 새로운 체제의 사회적·정치적 병폐를 발견하고 그 원인을 통치자에게로 돌렸다. 그는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통치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충고할 수 있는 우화집 «[[칼릴라와 딤나]]»를 번역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이븐 알 무카파는 작가이며 사상가이자
이븐 알 무카파는 행정, 정치와 관련된 공식적인 서한문과 위로, 축하, 친구 사이에 오가는 개인적인 서한문을 남겼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정치제도에 대한 비평과 그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교우들의 서한≫이다. 두 개의 소책자가 후에 함께 모아진 «작은 예절»과 «큰 예절»은 대부분 번역된 것으로 훌륭한 도덕과 행동에 관한 명언집으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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