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여자근로정신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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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조선에서 여자근로정신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미 특별한 법적 근거 없이 실시되고 있던 조선의 여자근로정신대는 [[1943년]] [[8월 23일]]에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되면서 합법적인 근거가 마련되고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법령은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도 적용되었다.<ref>교과서포럼,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기파랑, 2008년, 92쪽.</ref>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는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조선 여성이 소속되었으며, 군수공장 등에 투입되었다. 동원 방법은 관청의 알선, 공개 모집, 자발적인 지원, 학교나 단체를 통한 선전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주로 취업이나 진학을 미끼로 여성을 유인한 후 노동현장에 투입하였는데,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인권유린이나 임금착복도 흔하게 자행되어 사실상의 강제노동이었다. 근로정신대로서근로정신대의 동원된명목으로 일본과연행된 조선의조선인 여성은 20만명이며,20만명으로 그 중 조선인은 5만에서 7만명이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51577 이영훈 교수 "교과서 속 '위안부 20만'에 찬성 못해"], 《[[오마이뉴스]]》, 2005년 4월 26일추정된다.</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986898 "총인구 321만에 강제동원 인구 650만?"], 《연합뉴스》, 2005년 4월 26일.</ref>
 
==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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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도쿄 마사방적주식회사 누마즈 공장,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도토쿠 공장, 나가사키 조선소, 사가미 해군공창, 야하타 제철소 등이 강제로 끌려가 노역한 곳으로 지적되었다.
 
== 일본군 위안부와의 차이점 ==
{{참고|일본군 위안부|한국군 위안부}}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노동력의 동원이라는 점에서 성적 착취가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와는 다르다. 종전 후 위안부와 혼용하여 정신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ref name=ildaro20081215>[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4675&section=sc1 ‘여러분은 달러를 벌어주는 애국자입니다’ 증언 통해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속속 드러나] 2008/12/15 </ref> 이 때문에 근로정신대로 강제노역을 마치고 온 여성들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경력자로 오해받을까봐 근로정신대원이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고 살아온 경우도 있었다.<ref>{{저널 인용
|제목=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항소심 제1차 공판 열려
|저자=민족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