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바

고전기 인도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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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바국(타밀어: பல்லவ நாடு 팔라바나두), 약칭 팔라바(타밀어: பல்லவ)는 275년부터 897년까지 남인도 지역을 지배했던 고전기 인도의 왕국이다. 팔라바국은 마헨드라바르만 1세와 나라심하바르만 1세의 통치 기간 동안 강국이 되었으며, 9세기 초까지 텔랑가나타밀나두의 북쪽 지역을 약 600년간 지배하였다.

팔라바국
பல்லவ நாடு

275년~897년
국기
수도칸치푸람
정치
정치체제군주제

275년 ~ 300년
570년 ~ 600년
600년 ~ 630년
630년 ~ 668년
880년 ~ 897년

심하바르만 1세(초대)
심하비슈누
마헨드라바르만 1세
나라심하바르만 1세
아파라지타바르만(말대)
지리
위치남인도
인문
공통어산스크리트어
타밀어
텔루구어
프라크리트어
공통문자팔라바 문자
데모님팔라바인
종교
종교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기타
현재 국가인도의 기 인도

인도 타밀나두 주칸치푸람에 수도를 두었던 팔라바국은 문화의 예술의 다양한 발전과 힌두교의 흥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그로 인해 인도아리아 문화를 남부에 전파하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인도 역사상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팔라바의 군주들은 독실한 힌두교 신자로서 다양한 야즈나를 올리는 한편 시바, 비슈누, 브라흐마, 락슈미 같은 힌두 신들을 모시는 여러 만디르들을 건립하였으며, 수도인 칸치푸람의 대학을 중심으로 산스크리트 문학 등의 학문 또한 유행하였다. 이처럼 팔라바국은 힌두교산스크리트어 등의 힌두 문화가 남인도 지역에 전파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힌두교의 전파에 힘쓰고 계속해서 학문을 보호함으로써 팔라바 왕국의 수도인 칸치푸람은 남인도 학문의 중심지인 동시에 힌두교의 7대 종교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또한 선종의 교조인 보리달마가 팔라바국에서 태어났으며 불경에서 향지국(香至國)으로 한역되었다.

기원 편집

팔라바국을 건국한 팔라바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파르티아인들의 후예라는 설,[1] 사타바하나를 건국한 안드라인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설,[2][3] 타밀인 계통이라는 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아직 정설로 굳혀진 것은 없는 실정이다.

역사 편집

팔라바국은 기원후 3세기 중엽 심하바르만 1세(275년 ~ 300년)에 의해 건국되었다. 이후 6세기 후반 심하비슈누 왕(570년 ~ 600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흥기하기 시작하였다. 심하비슈누는 팔라바국의 본격적인 기반을 이룬 왕으로서, 정통 힌두교도였던 그는 힌두교를 거부한 칼라브라를 포함해 다수의 적들을 무찌르고 촐라국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 결과 팔라바국의 영토는 카베리강크리슈나강 사이의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심하비슈누의 후계자 마헨드라바르만 1세(600년 ~ 630년)의 치세부터는 사타바하나 이후 데칸 지역을 지배하던 국가인 찰루키아와의 대를 이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시인이며 음악가이기도 했던 마헨드라바르만은 학문과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트리치노폴리, 발람, 마헨드라바디 등에 시바비슈누를 위한 힌두교 사원들을 세우기도 하였다. 마헨드라바르만의 후계자는 나라심하바르만 1세(630년 ~ 668년)로, 이 기간 동안 팔라바 왕국의 주요 항구였던 마하발리푸람은 중요한 교역 중심지가 되어 이곳으로부터 팔라바의 문화적 영향이 동님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팔라바 시대 건축물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라트 사원이 마하발리푸람에 세워졌다. 난디바르만 2세 이후 팔라바국은 계속해서 이웃 나라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880년 아파라지타 왕 때에는 촐라국의 아디트야 1세의 도움으로 간신히 판디아국의 침략을 물리치기도 했지만, 결국 893년 촐라국에 흡수되면서 팔라바국은 멸망하였다.

정치 편집

팔라바국은 굽타 제국과 유사한 행정조직을 지니고 있었다. 군주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녔지만 전제군주처럼 무제한으로 권력을 휘두르진 않고 재상들의 도움을 받으며 법에 따라 통치를 시행하였다.

문자 편집

팔라바국에서는 팔라바 문자라고 하는 고유 문자를 사용했는데, 이 문자들이 후에 동남아시아에 전파되며 크메르 문자,[4] 자와 문자,[5] 라오 문자,[6] 타이 문자,[7] 버마 문자[8] 등 오늘날 동남아시아에서 사용되는 문자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건축 편집

팔라바의 건축 양식은 대개 네 단계로 구별된다. 첫번째는 600년 ~ 625년까지의 마헨드라 양식, 두번째는 625년 ~ 647년까지 유행한 마말라 양식으로 마말라푸람(마하발리푸람)에 있는 라트 사원이 대표적인 건물이다. 세번째는 8세기에 유행한 라자싱하 양식으로, 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칸치에 있는 카일라샤나타 시바 사원이 있다. 마지막 시기는 팔라바의 마지막 왕 아파라지타 시대(880년 ~ 897년)에 유행한 아파라지타 양식으로, 바하사라 사원이 이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각주 편집

  1. Sathianathaier 1970, 255–256쪽.
  2. Aiyangar & Nilakanta Sastri 1960, 314–316쪽: "There is much in favour of the thesis that the Pallavas rose into prominence in the service of the Satavahanas in the south-eastern division of their empire, and attained independence when that power declined."
  3. Sathianathaier 1970, 256쪽: "S. Krishnaswami Aiyangar regards the Pallavas as the feudatories of the Satavahanas—officers and governors of the south-eastern part of their empire, equates the term Pallava with the terms Tondaiyar and Tondaman (people and rulers of Tonda-mandalam), and says that, after the fall of the Satavahana Empire, those feudatories 'founded the new dynasty of the Pallavas, as distinct from the older chieftains, the Tondamans of the region.'"
  4. “Khmer”. 2018년 9월 13일에 확인함. 
  5. “Javanese alphabet”. 2018년 9월 13일에 확인함. 
  6. “Lao”. 2018년 9월 13일에 확인함. 
  7. “Thai”. 2018년 9월 13일에 확인함. 
  8. “Burmese”. 2018년 9월 13일에 확인함. 

출처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