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중성리 신라비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발견된 신라의 비석

포항 중성리 신라비(浦項 中城里 新羅碑)는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비석이다. 2012년 2월 2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58호로 지정[1]되었다가, 2015년 4월 22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18호로 승격[2][3]되었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
(浦項 中城里 新羅碑)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보
종목국보 제318호
(2015년 4월 22일 지정)
수량1기
시대신라
소유국유
위치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132-0 (마동,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좌표북위 35° 47′ 0″ 동경 129° 18′ 29″ / 북위 35.78333° 동경 129.30806°  / 35.78333; 129.30806좌표: 북위 35° 47′ 0″ 동경 129° 18′ 29″ / 북위 35.78333° 동경 129.30806°  / 35.78333; 129.30806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포항 중성리 신라비
(浦項 中城里 新羅碑)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해지)
종목보물 제1758호
(2012년 2월 22일 지정)
(2015년 4월 22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포항 중성리 신라비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이 비는 신라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이다. 이 비의 발견 장소가 포항 냉수리 신라비 발견 장소로부터 8.7km 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인 데다, 비문의 내용 또한 유사점이 많다는 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지방민이 관여된 재산과 관련하여 분쟁이 있었다는 점, 이들 분쟁에 대해 신라의 지배층들이 합동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는 점, 판결 이후 이들 문제에 대한 앞으로의 재발 방지를 명시하고 있었다는 점 등의 유사성이 있고, 그리고 관직명과 관등 표기의 유사성 및 포항 냉수리 신라비에 나타나는 인물과 동일인이라고 추정되는 인명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신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내용을 연구ㆍ확정 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1]

특히 이 비는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비 중에서 그 연대가 가장 앞선 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신라의 서예사를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우선 문장 기술이 능숙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점으로 보아 당시 신라에서는 중국의 한문(漢文)이 크게 보편화되지 않았음을 추정해 볼 수 있으며, 또한 비문의 서체로 보아 중국의 한(漢)나라 또는 위진(魏晉)시대 서예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이 비의 서체를 굳이 중국의 서예 발전의 과정 상에서 비추어 본다면, 소전(小篆)으로부터 예서(隸書)로 이행되어 가는 과정 상의 고예(古隸)에 비견해 보거나, 상하 장방형(長方形)의 소전체로부터 좌우 편방형(偏旁形)의 예서체로의 이행 과정 상에서 잠시 나타났던 파책(波磔)이 없는 고예체에 비견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중국의 서체와 서풍에 별로 영향받지 않은, 신라의 자생적, 토속적 서체ㆍ서풍이라 하겠다. 글자의 결구가 불균형의 조화를 이루면서,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익살로 넉넉한 여유로움의 자유를 구현하는 무정형(無定形)적 서예미학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어느 서체ㆍ서풍만을 고집하지 않고 전법(篆法)ㆍ예법(隸法)ㆍ해법(楷法)은 물론 행법(行法)까지도 두루 섭취ㆍ융합하여 불균형의 조화를 구현하고 있는 신라적 자생서예라고 하겠다.[1]

이 비는 통일신라 이전 신라시대의 심미의식과 초기 신라 서예사를 밝히는 데 획기적 자료이다.[1]

또한 이 비는 통일신라 이전의 역사와 문화 예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1]

국보 승격사유편집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2009년 5월에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에서 발견된 현존 최고(最古)의 신라비이다. 모양이 일정치 않은 화강암(花崗巖) 1면에서 전체 12행 20자로 음각(陰刻)된 도합 203자의 비문이 각자(刻字)되어 있다. 비석은 비면 상단부 일부와 우측면 일부가 떨어져 나갔을 뿐 비문의 대부분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이다.[2]

이 비의 비문은 신라 관등제의 성립과정, 신라 6부의 내부 구조, 신라의 지방통치와 분쟁 해결절차, 궁(宮)의 의미, 사건 판결후 재발 방지 조치 등 신라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상황을 알려주고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2]

이 비의 글씨체는 예서로 분류되는데 ,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통하는 고예서(古隸書)로서 신라 특유의 진솔미를 보여 준다. 가로획에서 수평을 유지하는 가운데 기울기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에서 예서임을 알 수 있으며, 다소 보이는 해서의 필의(筆意)는 단양적성비같은 고해서(古楷書)로 변해가는 전초(顚草)이며 선구가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냉수리비와 봉평비보다도 더욱 신라스럽다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가 있다.[2]

또한 제작시기도 지증왕 4(503)년의 <포항 냉수리 신라비> 보다도 2년이나 앞서는 신라 최고의 비이다. 더욱이 제작시기가 늦은 <울진 봉평리 신라비> (법흥왕 11, 524)도 이미 1988년에 국보 제242호로 지정되었고, < 포항 냉수리 신라비 > (지증왕 4, 503)도 1991년에 국보 제26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2]

따라서 이와 같은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에 의거, 현재 보물 제1758호로 지정된 이 비를 국가문화재 국보로 승격 지정하여 연구하고 보존·관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12-23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지정 및 지정번호 변경》,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7705호, 427면, 2012-02-22
  2. 문화재청고시제2015-50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8496호, 53면, 2015-04-22
  3. 문화재청고시제2015-55호,《국가지정문화재(보물) 해제》,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8503호, 54면, 2015-05-01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