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대한민국의 옛 기업
(한보사태에서 넘어옴)

한보그룹(韓寶그룹, Hanbo Group)은 1974년 한보상사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기업이다. 은행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으며 1996년말 재계 서열 14위까지 오른 대기업이기도 하다. 1997년 1월 30일 부도 처리가 되었다.[1][2]

한보그룹
형태기업집단
창립1974년 3월 7일
해체1997년 1월 23일
본사 소재지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로 212 (대치동, 은마종합상가 3층)
모기업한보상사

역사 편집

창업 및 성장기 편집

  • 1974년 3월 7일: 몰리브덴을 수출하는 (주)한보상사를 설립.
  • 1976년: 삼아건설 인수, 한보주택 설립으로 주택건설사업에 진출.
  • 1978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에 국내 최대 규모의 은마아파트단지 4,424가구 건축, 분양.
  • 1982년: 한보탄좌개발 설립.
  • 1984년: 금호철강 부산공장 인수로 한보철강 설립.
  • 1986년: 화신백화점, 영동간호전문대 인수.
  • 1989년 12월: 한보철강 1조 2,000억원을 투자해 충청남도 당진군에 1백만평의 제철소 부지매립공사 착수.
  • 1991년 2월: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사건 발생으로 정태수 회장 구속.
  • 1991년 3월: 한보주택 법정관리 신청.
  • 1991년 7월: 정태수 회장, 집행유예로 석방.
  • 1991년 9월: 3남 정보근부회장이 경영대행.
  • 1993년: 정태수 총회장, 경영일선 복귀
  • 1993년 4월: 승보엔지니어링, 승보데이타시스템 설립.
  • 1993년 7월: 상아제약 인수
  • 1994년 7월: 삼화신용금고 인수.
  • 1994년 9월: 대한석탄공사 인수 계획 발표.
  • 1995년 3월: 영상프로그램 공급업체인 한맥유니온 설립.[3]
  • 1995년 6월 16일: 유원건설 인수[4]
  • 1995년 6월 23일: 당진제철소 1단계 공사 완료(열연 연산 3백만, 철근 1백만규모)[5]
  • 1995년 11월: 정태수총회장,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변칙실명전환으로 구속.
  • 1996년 3월: 정보근부회장, 그룹회장에 취임.
  • 1996년 4월: 정태수 총회장에 대한 병보석 허가
  • 1996년 4월 23일: 유원건설 사명을 한보건설로 변경.[6]
  • 1996년 7월: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사업 참여 발표.[7]
  • 1996년 9~12월: 제일, 산업, 조흥, 외환은행 각 1천억원씩 한보철강에 4천억원 지원.

1996년 22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었고, 5조 4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8]

몰락기 편집

  • 1997년 1월 8일: 한보철강 자금난으로 제일은행등 4개 은행으로부터 1천2백억원 지원받아 부도위기 넘김.
  • 1997년 1월 9일: 그룹 자구노력으로 3천억원 규모 부동산 매각 발표.
  • 1997년 1월 23일: 정태수 총회장 보유 한보철강 주식 일체 은행권에 담보제공, 은행관리 수용 발표[9]

부도직전 당시 한보그룹 계열사 편집

  • ㈜한보
  • 상아제약
  • 승보목재
  • 승보철강
  • 한보건설(유원건설)
  • 한보관광
  • 한보아파트관리
  • 한보에너지
  • 한보정보통신
  • 한보철강공업
  • 한보철강판매
  • 학교법인 한보학원

부도이후 계열사 현황 편집

  • ㈜한보 : 부도 이후 진흥기업으로 넘어갔고 이후 LIG그룹에 인수되어 LIG건설(현재의 건영)에 합병되었다.
  • 상아제약 : 부도 이후 2001년 녹십자에서 인수하여 녹십자상아로 변경하였고 녹십자와 합병되었다.
  • 한보관광 : 부도 이후 상아관광으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나 2008년 폐업하였다.
  • 한보철강 : 부도 이후 2004년 현대하이스코로 넘어갔고 현대제철로 통합하였다.
  • 한보에너지 : 부도 이후 2003년 대한교과서로 넘어가서 서해도시가스(서해에너지)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부도원인 편집

한보철강 당진공장은 당대 미검증된 신종 공법 '코렉스'를 도입하기 위해 설계변경 등의 이유로 투자규모가 5조 7,000억원에 달했고, 이를 회사채 발행, 차입 등의 무리한 자본조달로 인해 1996년 말 자금이 바닥나게 됐다.[10] 은행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들 위주로 대형 로비를 벌였다.[11]

결국에는 대형 부정부패 사건으로 이어져 한보 리스트가 정치, 사회상에 회자되기 시작했고 수사가 금융계 및 정치권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로 신광식 제일은행장, 우찬목 조흥은행장,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 등 전/현직 은행장 7명이 불려가 조사받고 이 중 3명이 구속되었다. 곧이어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의 연루 의혹이 드러나며 이후 구속되기에 이르렀다.[12]

공익 사업 편집

  • 한보 멧돼지 씨름단: 부도 이후 해산되었으며, 동성종합건설 백호씨름단으로 넘어갔지만 이후 해산되었다.
  • 학교법인 한보학원: 강릉영동대학교의 전신인 영동전문대학을 운영했다.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한보철강 파문] 최대위기 '한보그룹' 성장일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3일. 2024년 3월 15일에 확인함. 
  2. “현대·삼성·대우·기아의 역사를 바꾼 1997년”. 《한겨레》. 2020년 7월 7일. 2024년 3월 15일에 확인함. 
  3. 고철종 기자 (1995년 2월 23일). “한보그룹, 영상사업 진출한다”. 《연합뉴스》. 
  4. 김상철 기자 (1995년 6월 16일). “한보그룹,지난 4월 부도난 유원건설 인수”. 《MBC뉴스데스크》. 
  5. “한보철강 아산만에 광진공장 준공”. 《KBS 9시뉴스》. 1995년 6월 23일. 
  6. 김대호 기자 (1996년 4월 23일). “유원건설, ‘한보건설주식회사’로 개칭”. 《연합뉴스》. 
  7. 김혜례 기자 (1996년 7월 18일). “한보그룹, 시베리아 이루쿠츠크 가스전 개발사업 참여”. 《KBS 9시뉴스》. 
  8. 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2020년 11월 21일). “한보사건과 정태수(Ⅲ)”. 《조세금융신문》. 
  9. 임병걸 기자 (1997년 1월 23일). “연쇄부도 위기”. 《KBS 9시뉴스》. 
  10. 임병걸 기자 (1997년 1월 24일). “무모한 철강업 진출”. 《KBS 9시뉴스》. 
  11. 이강원 기자 (1999년 1월 21일). "한보 비자금 7천 332억원 조성". 《연합뉴스》. 
  12. 이창호 기자 (2019년 6월 27일). “IMF와 수서비리…잊을 수 없는 ‘한보’ 정경유착”. 《중기이코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