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질(1350년 ~ 1400년 1월 10일[1] 또는 1410년)고려 말·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392년 7월 조선이 건국되자 예문관학사로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국호를 조선으로 결정받고 돌아왔다. 이후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예문관대학사(藝文館大學士)를 지냈다.

본관 청주(淸州). 자는 중질(仲質), 처음 이름은 선복(善福)이고, 호 죽소(竹所). 시호 문렬(文烈)이다.

  • 한수(韓脩)의 아들이고 그의 손자가 한명회(韓明澮)이다. 1380년(우왕 6년) 문과에 급제,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고, 1374년(공민왕 23년) 대군시학(大君侍學)을 거쳐 공양왕 때 형조판서·우상시(右常侍)·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1390년(공양왕 2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서북면도관찰출척사 겸 병마절도사(西北面都觀察黜陟使兼兵馬節度使)가 되었다.
  •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예문관학사(藝文館學士)로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국호를 조선으로 결정받고 이듬해 돌아왔다. 양광도관찰출척사(楊廣道觀察黜陟使)가 되었다가, 1397년(태조 6년)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예문관대학사(藝文館大學士), 예문춘추관 태학사(藝文春秋館太學士)를 지냈다.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치적을 쌓았다.

<가족>

  • 1부인:경주 이씨(사별)-경주 이씨 문하시중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이성림(李成林)
    • 1녀
  • 2부인:청풍송씨(淸風宋氏) 송신의의 딸(1남 2녀)
    • 아들-한기(한명회 아버지)
  1. 정종실록에 의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