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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 방어 전투

형산강 방어 전투한국전쟁 기간 중 9월 5일 부터 9월 13일 까지 형산강을 도하하여 포항으로 진출하려는 조선인민군 제5사단을 대한민국 제3사단이 저지한 전투이다.

형산강 방어 전투
한국 전쟁의 일부
Korea-Gyeongju-Hyeongsan River-1.jpg
날짜1950년 9월 5일 ~ 9월 13일
장소
결과 대한민국 국군 승전
교전국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휘관

대한민국 이종찬 제3사단장 대령
대한민국 김응조 제22연대장 중령
대한민국 이소동 제1대대장 중령
대한민국 정영록 제2대대장 중령
대한민국 정순민 제3대대장 중령
대한민국 김우영 제23연대장 대령
대한민국 최상준 제2대대장 대위
대한민국 김종병 제3대대장 대위

대한민국 이치업 제26연대장 대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마상철 제5사단장 소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박병수 제10연대장 대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봉문 제11연대장 대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12연대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오진우 제 766부대장
병력
1만 2600명 8500명
피해 규모
알 수 없음 알 수 없음

배경편집

1950년 9월 4일 한국군 수도사단장 이종찬대령은 포항 외곽에 편성한 방어진지를 지탱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방어에 유리한 형산강변을 연하여 새 방어선을 형성할 계획을 세우고 군단장의 승인을 받았다. 9월 5일 02:30에 북한군 제5사단은 96고지[1]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고 05:30에 방어진지의 일각이 무너져 진내전이 벌어졌다. 이에 한국군 제3사단은 두호동에 배치된 제23연대의 일부병력을 96고지 남쪽의 죽림산[2]·연화봉으로 급파하여 제22연대의 주 저항선을 돌파한 북한군을 저지하게 하였다. 북한군 SU-76 자주포 5대가 포항시외곽으로 진출하여 미군 전차에 포격을 가하였으나, 美 공군 전폭기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다. 한국군 제3사단은 14:30부터 철수를 개시하였으며, 그 날 저녁 형산강에 진출을 완료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전투과정편집

형산강 방어선의 붕괴편집

9월 6일편집

한국군 제3사단은 형산강을 연한 방어진지 구축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형산 우측의 중단동에서 연일까지 3km 구간[3]의 지형이 대안보다 낮아 북한군의 감제에 노출되었다. 따라서, 한국군은 주간에는 방어진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보급도 어두워진 다음에 추진되었다. 같은 날 군단본부로부터 제8사단 제10연대의 원대복귀를 위한 준비명령[4]이 하달되었다. 한국군 제3사단장 이종찬 대령은 북한군의 감제하에 노출되는 지대임을 감안하여 이날 밤에 제22연대와 진지를 교대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러나, 제10연대장 고근홍 중령은 교대부대인 제22연대가 방어지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임의로 철수하여 형산·영일 간 5km의 방어정면이 공백지대가 되었다. 북한군 제5사단의 주력은 형산 맞은편의 제산일대에 집결하여 형산운제산경주 축선으로 진출할 기회를 찾던 중, 공백지대를 포착하여 대기 중인 증강된 1개 대대를 먼저 남하시키고, 후속 병력을 부조 나루터 부근으로 집결시켰다. 또한 효자동 부근의 북한군은 중단동일대로 진출하여 한국군 제10연대가 구축한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진지를 교대하기 위해 이동한 제22연대의 선발대는 제10연대 방어지역으로 진입한 얼마 뒤에 북한군의 사격을 받았다. 한국군 제22연대장 김응조 중령은 연대 주력의 행군을 정지시키고 수색대를 파견한 결과 형산·중단동일대에 이미 북한군이 진출한 상황을 확인하였다. 한국군 제3사단장은 북한군 후속병력의 형산강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제23연대로 하여금 노출 된 좌측방의 경계를 강화시키고 제22연대는 옥녀봉으로 진출하여 형산을 거쳐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도록 조치하고 이 상황을 군단에 보고하였다.

9월 7일편집

북한군 제5사단의 증강된 1개 대대는 운제산으로 남하하였으며, 부조 나루터 부근에서 형산강을 건넌 북한군의 일부병력은 옥녀봉과 197고지로 진출하여 한국군 제23연대의 방어진지 배후에 위치하고자 하였다. 197고지 북동쪽 2.5km 지점의 장동으로 진출한 한국군 제22연대는 197고지를 목표로 공격하였으나, 북한군의 숫적 우세와 지형의 불리함으로 오히려 2km를 후퇴하여 남성동 부근의 80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한국군 제3사단장은 형산강 방어선을 지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9월 8일 저녁에 송정동·장동·우복동 간 남북으로 흐르는 개천을 연하여 새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운제산 전투편집

9월 7일편집

한국군 제1군단장은 美 처치 특수임무부대장과 함께 제3사단 방어지역으로 침투한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처치 특수임무부대가 운제산 탈환을, 한국군이 북한군의 퇴로 차단과 소탕작전을 담당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군 제1군단은 아화[5]에 배치된 제26연대에 원대복귀 준비명령[6]을 하달하고, 우선 제2대대를 방어지역으로 차량행군시켰다. 한국군 제1군단장은 운제산의 북한군이 남서쪽으로 2km 떨어진 503고지로 진출한 상황을 확인하고 동산동에 집결 대기중인 수도사단 제18연대를 군단 예비로 전환하고 503고지의 북한군을 저지하도록 명령하였다. 한국군 제18연대는 503고지 남서쪽의 438고지로부터 392고지 간에 병력을 배치하고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할 태세를 갖추었다. 美 처치 특수임무부대장은 운제산 탈환 임무를 美 제24사단 부사단장 데이비슨 준장에게 부여하고, 이를 위한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게 하였다.

9월 8일편집

한국군 제1군단은 美 데이비슨 특수임무부대의 공격개시일이 연기된 것을 확인하고[7] 제3사단이 197고지와 옥녀봉을 탈환하여 운제산에 진출한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한편, 392고지와 438고지에 전개한 제18연대에 197고지 공격을 위한 준비명령을 하달하였다.

9월 9일편집

새벽에 한국군 제18연대장 임충식 대령은 연대 수색대를 운제산에 침투시켜 북한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임충식 대령은 북한군의 보급과 병력 증원에 차질이 생겨 경주로 진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징후라고 판단하여 제1대대장 장춘권소령에게 197고지 탈환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날 저녁, 한국군 제18연대 1대대장 장춘권소령은 화산동 동쪽 1.5km지점의 263고지로 진출하였다. 한국군 제23연대는 131고지[8]로 투입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한국군 제26연대는 건천을 떠나 경주·감포·양포동을 경유하여 세계동으로 이동하였으며, 한국군 제3사단은 원대복귀한 제26연대에 제8연대 제3대대를 배속하였다.

9월 10일편집

06:00에 한국군 제18연대 1대대는 197고지를 공격하여 6시간 후인 12:00에 목표를 점령하였고, 그 무렵 공수동[9]의 제22연대도 옥녀봉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美 데이비슨 특수임무부대는 경주를 떠나, 19:00에 오천 비행장 남쪽의 용덕동에 도착하였다. 한국군 제26연대는 제23연대가 투입된 131고지로 진출하였다.

9월 11일편집

아침에 美 제19연대 제1대대를 선두로 공격을 개시하였고, 이 상황을 확인한 한국군 제18연대는 제2대대를 새터마을로 이동시켜 제22연대와 함께 옥녀봉을 협공하게 하였다. 16:00에 한국군 제22연대는 옥녀봉을, 제18연대 제2대대는 서쪽의 253고지를 각각 점령하였으며, 운제산의 북한군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9월 12일편집

美 제19연대 제1대대는 공군 전폭기가 목표를 강타한 직후 운제산을 점령하고 한국군 제26연대에 고지를 인계하였다. 이 날 오후, 한국군 제18연대는 형산을 탈환하고 형산강변의 방어진지를 회복하였다. 얼마 뒤, 운제산에서 철수한 북한군이 형산 서편의 개활지[10]를 횡단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좌측방 낙산에 배치된 제1연대와 연합하여 북한군을 타격하였다.

주저항선의 회복편집

9월 13일편집

북한군 제5사단은 9월 공세 이후 전투력이 약화되어 9월 12일~9월 13일에 이르러서 수세로 전환하였으며, 연일[11]에서 증강된 1개 대대가 저항을 계속하였다. 한국군 제23연대는 청림동으로 이동한 제26연대와 임무를 교대하고 제2, 3대대로 연일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9월 14일편집

한국군 제23연대장 김종순 대령은 주간 공격이 어려움을 판단하고 증강된 1개 소대로 특공대를 01:00에 연일로 침투시켜 목표 배후에서 급습하였다.북한군이 급습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자 제23연대의 2개 대대는 돌격을 감행하여 05:00에 연일을 탈환하였다.

결과편집

한국군 제3사단은 1950년 9월 6일 방어선이 돌파된 이후 8일 만에 형산강변의 방어진지를 회복하고 반격을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방어진지를 재편성 하였다.


각주편집

  1. 포항 북동쪽 1km 지점
  2. 일명 탑산, 포항지구 전적비가 위치해있다.
  3. 배속된 제8사단 10연대 방어지역
  4.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0호(1950. 9. 8)
  5.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아화리
  6. 제1군단 작전명령 제89호(1950. 9. 10.)
  7. 9월 8일과 9일에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에 유엔군 공군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던 데 그 이유가 있었다.- 국방부, 안강·포항전투 : 한국전쟁전투사, 1986
  8. EQ 346773
  9. EQ 3179
  10. 강동면 국당리
  11. 일명 생지동

참고자료편집

  • 국방부, <<한국전쟁사>>, 1970
  • 국방부, <<안강·포항전투 : 한국전쟁전투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