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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허균이 지은 한글 소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길동전 첫 쪽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홍길동전

홍길동전》(洪吉童傳)은 1612년 허균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한글 고전소설이다. 의적 홍길동을 소재로 한 내용이다.

조선 시대의 도적패 우두머리였던 홍길동(洪吉同)의 이야기를 허균이 소설로 꾸몄으리라 여겨지고 있다. 실존 인물인 홍길동(洪吉同)은 연산군 때 사람이나, 홍길동전의 배경은 세종 때로 설정되었다.[1]

내용편집

조선 세종 때 좌의정 홍상직(洪尙直)의 얼자로 태어난 홍길동(洪吉童)은 무예예의를 익혔으나 얼자로 태어나 자신의 뜻을 다 펴지 못함을 한탄한다. 홍길동은 홍상직과 시비(侍婢) 사이에 출생한 서얼이다. 한편, 홍 대감의 또 다른 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할 위기를 모면한 길동은 집을 떠나 도적의 소굴로 가 재주를 보이고 우두머리가 된다.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이라 자칭하고 탐관오리와 패악하고 타락한 승려를 징치하여 전국에 이름이 알려지자 조정은 홍길동을 잡기 위해 군사를 동원한다.

나라에서는 홍길동의 신기한 재주로 인해 도저히 잡을 수 없자, 아버지인 홍 대감을 회유하여 길동을 병조판서에 제수하려 하니 불러들이라 한다. 이에 임금 앞에 나타난 길동은 병조판서 제수를 사양하고 무리를 이끌고 나라를 떠날 것을 알리고 공중으로 몸을 띄워 홀연히 사라진다. 이후 길동은 어머니와 수하들을 이끌고 율도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운다.[2]

평가편집

허균은 그의 저서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의 〈호민론〉(豪民論)에서 조선 시대의 문제점을 고찰하면서 국왕은 오로지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기술하였다. 허균은 세상을 바꾸려는 백성을 뜻하는 호민(豪民)의 대표적 상징으로 홍길동을 설정하고 《홍길동전》을 저술하였다.[3] 이와는 반대로, 《홍길동전》에 반영된 이념과 이를 서술하는 관점은 허균의 사상과 무관하며, 오히려 《홍길동전》의 줄거리는 작가가 민중의 기호에 맞게 전략적으로 기획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입장도 존재한다.[4] 일각에서는 자신에게 가해진 적서 차별로 타자화된 홍길동이 율도국을 점령하여 그곳의 존재와 제도를 타자화하는 것은 식민주의적이라고 지적하였다.[5]

논쟁편집

저자 문제편집

홍길동전의 저자를 허균이라고 기술한 최초의 문헌은 이식의 《택당집》(澤堂集)으로, 여기에는 ‘筠又作洪吉童傳以擬水滸’라는 기술이 있다.[6]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한국학자 다카하시 도루가 《일본문학 강좌》 제12권 〈조선문학 연구 – 조선의 소설〉(1927, 신초샤)에서 택당집의 기록을 인용하며 홍길동전을 허균이 지었다고 한 것이 근대의 최초의 언급이다.[7] 다카하시는 조선의 한문 문헌에 능통하던 인물로, 그는 허균은 양반이었으므로 허균이 썼을 최초의 홍길동전은 한문소설이었다고 주장하였고, 이식도 그 판본을 보고 《택당집》에 기록하였던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8] 이윽고 다카하시의 제자였던 김태준이 스승의 견해를 좇아 〈조선소설사〉(1930)에 홍길동전의 저자를 허균이라고 기록한 이래[9][10], 많은 학자들이 이 견해를 정설로 수용하고 있다.[11]

학계의 주류 입장과는 별개로, 국문학자 이능우(李能雨, 1920~2006)와 김진세(金鎭世, 1930~)는 허균의 사상과 홍길동전의 사상이 다르고, 허균이 문초를 받을 때 홍길동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 등을 근거로 들면서, 현전하는 홍길동전은 허균이 짓지 않았다는 견해를 전개하였다.[12]

한편 이윤석(1949~) 등은 《택당집》에 언급된 ‘홍길동전’은 현전하는 ‘홍길동전’과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13] 그의 주장에 따르면, 홍길동전처럼 임금과 아버지, 형을 존경하는 윤리를 철저히 어기는 작품이 출현하고, 그러한 작품이 국가의 제재 없이 버젓이 유행할 수 있었다면, 홍길동전은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나라가 백성을 통제할 수 없게 된 19세기에 등장하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14] 그는 《상서기문》(1794)에 기록된 1790년대 무렵에 조선에서 유행한 소설의 목록에 홍길동전과 유사한 《소대성전》이 있고 홍길동전은 없다는 점[15], 《택당집》 이후 심재의 《송천필담》(松泉筆譚)이나 홍한주(洪翰周, 1798~1868)의 《지수점필》(智水拈筆) 등에서도 홍길동전의 저자를 허균이라고 하나 이들은 《택당집》을 단순히 인용한 기록이라는 점, 19세기 중반까지 발행된 그 밖의 문헌에서 홍길동전의 저자를 언급하는 문헌은 발견된 것이 없다는 점, 이식이 말한 ‘홍길동전’과 ‘홍길동전’이라는 제목을 단 현전하는 이본들이 같은 것인지 근거가 없다는 점[6]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2019년에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하는 황일호(黃一皓, 1588~1641)의 《노혁전》이 발굴되면서, 홍길동 이야기를 허균만이 소설로 쓴 것은 아님이 밝혀졌다.[16]

‘최초의 한글소설’ 문제편집

종래에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졌었으나, 1997년에 채수(蔡壽)가 1511년경에 지은 《설공찬전》의 국문본이 발견됨으로써 《홍길동전》이 최초의 한글 소설이 맞는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한글 소설이라는 개념도 각 학자마다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순 한글로 쓰는 것을 한글 소설로 봐야 할지 아니면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된 것을 봐야 할지 논란이 있다. 설공찬전은 《중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되었기에 최초의 한글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홍길동전은 저자로 여겨지는 허균이 지었다는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그가 사망한 이후 약 100년 후 택당 이식의 《택당집》에 저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실리기 때문에 원본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근거가 없는 이상 여전히 최초의 한글 소설로 봐야 타당할 것이다.[모호한 표현]

율도국 실존 문제편집

율도국은 《홍길동전》의 후반부에서 홍길동이 점령한 국가의 이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율도국을 실존한 나라로 보며, 유구국이 바로 율도국이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위도가 율도국의 모델이 되었다고 추측한다.[17]

대중문화편집

《홍길동전》을 각색해서 만든 작품은 다음과 같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박은봉, 〈홍길동은 실존인물이 아니다?〉,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책과함께, 2008
  2. 이근호, 《한국사 사전》, 청아출판사, 2006
  3. 이욱, 〈조선시대의 의적〉, 《내일을 여는 역사》 제11호, 서해문집, 2003
  4. 한국고소설학회 2019, 300쪽.
  5. 한국고소설학회 2019, 301쪽.
  6. 이윤석 1997, 12쪽.
  7. 이윤석 2018, 26-29쪽.
  8. 이윤석 2018, 27, 31쪽.
  9. 이윤석 2018, 24, 28, 31쪽.
  10. 金台俊 (1930년 12월 4일). “朝鮮小說史 (18)”. 동아일보. 2019년 11월 10일에 확인함. 
  11. 한국고소설학회 2019, 295쪽.
  12. 이윤석 1997, 14쪽.
  13. 이윤석 1997, 13-14쪽.
  14. 이윤석 1997, 17쪽.
  15. 이윤석 2018, 59-60쪽.
  16. 이기환 (2019년 4월 24일). “한글 홍길동전이 허균 작이 아닌 5+1가지 이유…400년전 다른 한문 홍길동전까지 발견됐다”. 경향신문. 2019년 11월 10일에 확인함. 
  17. 강제윤 (2013년 6월 3일). '홍길동의 율도국' 위도와 채석강, 내소사, 매창 기행”. 프레시안. 2019년 11월 10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편집

  • 이윤석 (1997). 《홍길동전 연구: 서지와 해석》. 대구: 계명대학교출판부. ISBN 897585115X. 
  • 이윤석 (2018).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 서울: 한뼘책방. ISBN 9791196270247. 
  • 한국고소설학회 (2019). 《한국 고소설 강의》. 경기: 돌베개. ISBN 9788971999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