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 기(皇甫琦, ? ~ 1285년)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봉암(蓮唐)[1]이다.

생애 편집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1245년(고종 32)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과 함께 몽골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왔고[2], 1252년(고종 39) 판대부사(判大府事)로서 문과의 동지공거(同知貢擧)를 맡아 류성재(柳成梓) 등 44명에게 급제를 주었다.[3]

1257년(고종 33) 좌복야(左僕射), 이듬해 추밀원부사[2], 또 이듬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를 거쳤고[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다.[5]

1264년(원종 5) 한직에 머물러 있던 문생(門生) 이승휴(李承休)가 당시 인사권을 갖고 있던 이장용(李藏用)·류경(柳璥) 등에게 구관시(求官詩)를 지어 보내도록 조언하기도 했으며[1], 1285년(충렬왕 11) 졸했다.[5]

각주 편집

  1. 『동안거사집』
  2. 『고려사』 「고종세가」
  3. 『고려사』 「선거지」
  4. 『고려사』 「원종세가」
  5. 『고려사』 「충렬왕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