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롯데 자이언츠 시즌

1989년 롯데 자이언츠 시즌롯데 자이언츠KBO 리그에 참가한 8번째 시즌이며, 어우홍 감독이 팀을 이끈 마지막 시즌인데 전년도 시즌 뒤 선수회를 주도한 최동원에 대해 구단이 보복성 트레이드를 단행한 데 이어[1] 선수회 포기각서에 서명을 거부한 김용철마저 트레이드시키면서[2] 선수단의 골격이 흔들려버렸다. 게다가, 최동원과 맞바꾼 김시진이 롯데 이적 후 첫 등판인 1989년 4월 14일 사직 OB전에서 14이닝 동안 219개의 공을 던지는 오기를 발휘하면서 완투승(2-1)을 기록했으나[3] 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꿈치에 이상이 생겨 내리 4연패를 당하는 등 같은 해 4승(3선발승) 9패로 부진했고 이로 인해 4월까지는 4위권을 유지했으나 5월 이후 연패를 거듭하여 꼴찌로 추락해[4] 팀은 MBC 청룡에 반 경기 차로 밀리며 7팀 중 정규시즌 최하위에 그쳤고 이 과정에서 조동래 사장과 박종환 전무가[5] 1989년 6월 27일 사표를 제출했으며 1987년 10월 29일부터 2년 계약으로 취임한 어우홍 감독이 1989년 11월 말까지 임기가 남아있었음에도 감독직에서 물러났고[6] 김진영 감독이 부임하면서 계약기간이 남아있었던[7] 김용희 임태호 코치 외의 코칭스태프 전원이 팀을 떠나야 했다. 이 탓인지 김시진은 롯데 이적 첫 해인 1989년 3선발승에 그쳐 100선발승 문턱에서 주저앉았으나 다음 해 첫 승(4월 25일 OB전)을 첫 개인 100선발승으로 장식했는데 이 승리가 완봉승이라[8] 기쁨이 두 배였지만 김시진 이후 100선발승 투수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가 1995년 같은 팀 윤학길9월 15일 인천 태평양전에서 8이닝 5안타 2실점으로 선발승을 거둬[9] 역대 두 번째 100선발승 투수가 됐다.

선수단 편집

각주 편집

  1. “崔(최)동원 金(김)시진 유니폼 맞바꿔 입었다”. 조선일보. 1988년 11월 24일. 2021년 7월 24일에 확인함. 
  2. “「삼성 자이언츠」냐「롯데 라이온즈」냐 張孝祚(장효조)—金容哲(김용철)도 맞바꿨다”. 동아일보. 1988년 12월 21일. 2021년 7월 24일에 확인함. 
  3. 박건만 (1989년 10월 3일). “宣(선)동렬 投手(투수) 3관왕 확실 프로야구 개인타이틀 막판 불꽃 경쟁”. 경향신문. 2021년 7월 24일에 확인함. 
  4. “롯데구단 대폭 개편”. 부산일보. 1989년 6월 27일. 2021년 11월 29일에 확인함. 
  5. “巨人, 수술대 올랐다”. 부산일보. 1989년 6월 28일. 2021년 11월 29일에 확인함. 
  6. “감독을 찾습니다.”. 부산일보. 1989년 11월 1일. 2021년 11월 29일에 확인함. 
  7. “프로야구 각 구단 코치 「물갈이」 윤곽 드러나”. 부산일보. 1989년 11월 9일. 2021년 11월 29일에 확인함. 
  8. “金(김)시진 20개월만에 완봉승”. 조선일보. 1990년 4월 26일. 2021년 7월 24일에 확인함. 
  9. “해태 5연승‘막판 스퍼트’”. 조선일보. 1995년 9월 17일. 2021년 7월 24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