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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시위

홍콩의 범죄인 인도 조례에 반대하는 집회

2019년 홍콩 시위홍콩에서 범죄자를 중국 대륙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한 법안에 반대해 일어난 시위다. 3월 31일부터 시작된 이 시위와 함께 법안 저지를 위해 휴업, 동맹휴학, 파업, 국제연대 등으로 항의가 이어졌다. 홍콩의 입법기관인 입법회는 범죄인인도법의 2차 법안심사를 12일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 시위로 인해 심사가 연기되었고 6월 15일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다. 그러나 철회등의 요구가 이뤄지지 않아 11월 현재 계속 시위가 진행중이다.

2019년 홍콩 시위
항중모순의 일부
Demonstration in Wan Chai Hennessy Road overview 20190609.jpg
2019년 6월 9일 103만명이 모인 집회
날짜2019년 3월 31일 ~ 현재 진행중[1][2]
지역홍콩
원인홍콩 정부2019년 도주범죄인 및 형사법 관련 법률 지원 개정 법안 추진

반공정서 심화[3]
홍콩 경무처의 시위 탄압[4]

2014년 우산 혁명의 실패[5]
목적
상태홍콩 구의원 민주파 다수 차지
시위 당사자
주요 인물
사상자
10명 사망[7][8]
2,100명 이상 부상
1,117명 체포

3월 31일 첫 시위편집

시민 인권 전위(CHRF, Civil Human Rights Front)가 시작한 첫 시위는 3월 31일 루어드 로에서 시작하여 시민 광장까지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범죄인이 본토로 인도되면 홍콩은 어두운 감옥이 된다'며 악법 제정을 멈추라고 주장했다. 주최자는 만 2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했으나, 홍콩 경무처는 5천2백 명으로 추산했다.

6월 시위편집

6월 9일 시위편집

100만 명 넘는 시민이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와중에도 친중파 장관의 명령으로 출동한 홍콩 경찰들이 시위를 과잉진압하였다.[9] 그러는 상황에 극단적으로 분노가 쌓인 상태에서 한 모든 행위를 왜곡해서 공산당 홍콩 정부는 시민이 정부를 공격하는 '폭동'으로 규정해 체포 및 처벌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소 72명이 다쳤으며 2명이 중상이 발생하였다. 홍콩 경찰은 시위를 해산시켜 중국공산당의 이념을 더욱 전파하기 위해 고무총, 최루탄까지 사용하며, 중국 인민해방군이 하던 방식처럼 과격해지면 실탄을 사용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주변국들이 홍콩 경무처홍콩 정부를 비난하는 상황이지만 중국공산당은 내정간섭 하지 말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직접 중화민국의 총통차이잉원은 범죄자가 중화민국에 성공적으로 이송된다 한들 결단코 거부하겠다고 천명했다.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구실을 중화민국에서 직접 없애버린것이다. 이 시위의 여파로 법안결정이 연기되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경찰이 시민들에게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한다고 비판했다.

시위대의 소통창구로 사용되는 사용자 3만 명의 텔레그램 메신저의 그룹 관리자 이반 입은 공적 불법 방해 기도 혐의로 체포되었다.[10]

세계가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6월 14일 어머니들의 연좌 시위편집

6월 12일 캐리 람은 TVB와의 인터뷰에서 12일 젊은 시위대들이 한 것처럼 폭력적으로 시위를 한다면 어머니들처럼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을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개탄하였다. 이에 14일 저녁 3시간 동안 주최자 추산 6천명의 홍콩의 여성들이 차터 가든에서 검은 옷을 입고 카네이션 꽃을 들고 연좌시위를 벌이며 캐리 람의 사퇴와 법안의 철회를 요구하였다. 주최자들은 캐리 람의 발언을 규탄하는 4만4천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밝혔다.[11]

6월 15일 정부의 무기한연기편집

6월 15일 오후 3시경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추진의 무기한 연장을 밝혔다. 그는 "경험에 비춰볼 때 올해 안에 법안 추진을 재도입할 가능성은 없다"고 덧붙였다.[12]

7월 시위편집

법안 추진의 무기한 연기를 했지만 철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위가 계속 진행되었다.

8월 시위편집

공항 점거 등 시위가 확대되었다.

9월 시위 : 송환법 철회편집

송환법 철회가 발표되었으나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등 시위대의 나머지 요구 조건이 수용되지 않아 시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10월 시위 : 시위 격화편집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이 되는 10월 1일 국경절에 시위가 열렸고, 경찰과 시위대의 큰 충돌이 있었고 고교생이 실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또한 국경절을 앞둔 9월 29일 시위에서 고무탄을 맞은 인도네시아의 여자 기자가 실명한 사실이 10월이 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캐리람은 비상대권법을 발동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고 10월 4일 금요일 복면금지를 담은 긴급법을 의회를 거치지 않고 시행하였다.

11월 시위 : 사망자 발생편집

11월에는 자살이나 의문사를 제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고등법원에서 복면금지법을 비상대권법을 통해 실시한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으나, 정부가 상고하였고, 친중파의 반발로 대법원 결정이 나올때까지 판결 효력이 발효되지는 않았다.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는 민주파의 압승으로 끝났고 미국은 홍콩 인권법을 통과시켰다.

참조편집

현재 홍콩 경찰은 매우 강압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현재 중국 공안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고 있다. 또한 친중파의 테러로 홍콩 시민을 공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시위진압이라고 하지만 실탄과 총이 나오는 수준을 보면 내전 혹은 분쟁 수준으로도 보인다.

또한 친중파는 한국에 와서도 홍콩 시위를 방해하거나 해외 홍콩인을 억압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중국 모든 언론은 한국의 민주노총이 하는 방식의 일상적인 폭동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그 외 사실은 철저하게 차단 및 검열을 하고 발설하는 사람은 전부다 처벌하고 있다. 홍콩 친중파언론들은 홍콩 시위로 인해 홍콩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며 당장 시위를 멈추고 중단된 송환법에 만족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시진핑은 현재 일국양제를 훼손하는 모든 세력을 가만 두지 않는 다고 했으며, 홍콩의 안정을 위해 진압을 위한 인민해방군도 홍콩 내에 보낼 수 있다고 경고 했다. 참고로 같은 독재 국가 북한 또한 홍콩 시위를 반대하며 홍콩의 일국양제가 제대로 실천되길 바란다며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입장을 내었다.

참고로 블리자드 또한 중국 편을 섰다가 서방 측에 엄청난 비난을 듣게 되었다. 현재 홍콩 경찰은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게 영어를 쓰는 경찰이 결코 아니다. 일부는 인민해방군이나 중국 공안이 홍콩 경찰로 섞여 들어갔다는 말도 있는데 적어도 홍콩 경찰은 현재 전혀 인권을 지키지 않고 사실상 북한과 같은 방식으로 외국인,내국인을 체포하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香港反送中大事記:一張圖看香港人怒吼的185天”. 報導者. 2019년 8월 15일. 2019년 8월 24일에 확인함. 
  2. “《我係香港人》2019 反送中,催淚彈下的一國兩制”. 沃草. 2019년 8월 24일에 확인함. 
  3. “林鄭月娥電視講話 宣布撤回修例 拒設獨立委員會”. Stand News. 2019년 9월 5일. 2019년 9월 5일에 확인함. 
  4. Sala, Ilaria Maria (2019년 8월 21일). “Why There's No End in Sight to the Hong Kong Protests”. 《The Nation》. 2019년 8월 27일에 확인함. 
  5. “傘運感和理非無用 勇武者:掟磚非為泄憤”. 《Ming Pao》. 2019년 8월 18일. 2019년 9월 1일에 확인함. 
  6. [1]
  7. “【珍惜生命】沙田廣源邨男子墮樓不治 街坊含淚獻白花”. 《香港01》 (중국어). 2019년 7월 23일. 
  8. 장정아, 홍콩 100만명 시위 뒤엔 “한번도 존중받지 못했다”는 절망감, 한겨레신문
  9. 홍콩 시위: 시위 중 폭력사태까지 빚어져...주말에 추가 시위 예상, BBC
  10. https://www.scmp.com/news/hong-kong/politics/article/3014613/mothers-stage-sit-hong-kong-park-calling-government
  11. “100만 민심에 정부 '백기'…홍콩 위상 악화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