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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신(權日身, ? ~ 1791년)은 조선천주교 지도자로서, 호는 이암(移庵), 세례명은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이며, 순암(順菴) 안정복의 사위이다. 양근(楊根) 출신이다.

생애편집

성호 이익의 제자인 정약전·정약용·권철신·이덕조(李德祖) 등과 함께 1777년(정조 1)부터 한강가에 있는 산가에 모여,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는 신앙 운동을 전개했다. 1783년(정조 7) 동지 이승훈이 그의 아버지 서장관 이동욱(李東郁)을 따라 북경에 갔다가 이듬해 봄에 영세를 받고 돌아오자, 당초 신앙 운동을 같이 하던 동지들과 함께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1785년(정조 9) 이승훈의 주재(主宰)로 한양 명례동(明禮洞 : 명동) 김범우(金範禹) 집에서 열린 집회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1787년가성직 제도를 수립할 때 주교 이승훈에 의해 사제로 선임되었지만 가성직제도가 교리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평신도로 돌아감과 동시에 베이징에 사람을 보내 성직자의 파견을 요청했다.[1][2] 그 뒤 집안과 이웃에 열심히 전도하여 그 문하에 이존창(李存昌), 유항검(柳恒儉) 등 열렬한 신자가 나왔으며, 양근 일대에 열심히 전도하여 당시 그곳을 서학(西學)의 요람이라 하였다.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권상연(權尙然)·윤지충(尹持忠) 두 신자가 잡혀간 후 그도 이승훈과 함께 서학책을 간행한 혐의로 잡혀 이승훈은 삭직되고 일신은 제주도로 귀양갔다가 다시 예산으로 옮겨 간 후 노모의 처지를 생각하고 신앙심에 동요를 일으켜 회개서(悔改書)를 바치고 석방되었다.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덕일 (2009) 441쪽. "이승훈은 조선에 천주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북경 교회 체제를 인용해 자신이 주교가 되고 권일신權日身, 정약전 등 10명에게 신부직을 수행하게 해 교회를 운영해 나갔는데, 이를 정식 신부가 맡은 체제가 아니라는 뜻의 가성직 체제라고 한다."
  2. 〈권일신〉. 《두산 엔싸이버 백과사전》. 2016년 2월 8일에 확인함. ...권일신·최창현(崔昌顯)·유항검(柳恒儉)·이존창(李存昌) 등이 사제로서 각 지역에서 성사를 집전했다. 하지만 평신도가 성사를 집전해서는 안 된다는 교리서의 내용을 근거로 가성직제도에 의문이 제기되자, 권일신은 베이징의 주교인 구베아(Alexander de Gouvea, 湯士選)에게 조상 제사와 가성직제도에 관한 교리 해석 등을 부탁하는 편지를 써서 1789년 10월 동지사(冬至使) 일행으로 베이징으로 간 윤유일(尹有一)을 통해 전달했다. 

참고 문헌편집

  • 이덕일 (2009).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 옥당. ISBN 978-89-961525-2-1.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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