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현

대광현(大光顯, ? ~ ?)은 발해 마지막 왕 대인선세자다.[1]

926년 발해거란에 의해 멸망할 즈음에,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大光顯)이 장군 신덕(申德), 예부경(禮部卿) 대화균(大和鈞)•균로(均老), 사정(司政) 대원균(大元鈞), 공부경(工部卿) 대복예(大福譽),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 대심리(大審理), 소장(小將) 모두간(冒豆干), 검교(檢校) 개국남(開國男) 박어(朴漁), 공부경(工部卿) 오흥(吳興)이 그 남은 사람을 거느리고 수만 호가 도망하여 고려로 귀부하였다. 태조 왕건은 후하게 대접하여, 대광현에게 왕씨 성과 계(繼)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종적(宗籍)의 반열에 들게 하였다.[2] 또, 원보(元甫)의 벼슬을 받아 백주(白州, 황해도 배천)를 지키면서 집안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3]

망명 시기편집

고려사 태조 세가에서는 대광현이 934년에 망명하였다고 한다. 이는 발해가 망한 926년에서 8년이나 지난 시기다. 대광현의 망명 시기에 대해 다른 기록들은 다르게 적고 있다.

발해 멸망 후 말왕(대인선)의 동생 대씨(성명 미상)[4]에 의해 후발해가 건국되었고, 후발해왕은 934년 남해부(南海府)의 열씨(烈氏, 옛 발해의 귀족)의 협력으로 대광현을 쫓아버렸다고 한다. 이에 대광현이 백성 수만을 인솔하여 고려에 망명했다고 하니 대광현의 귀부시기는 934년이 맞다고 보겠다.

발해 세자 대광현은 발해 멸망 후 934년까지 발해 부흥을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고려로 귀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계편집

  • 부왕 : 대인선(大諲譔) - 발해 말왕(末王, 재위 : 906년~926년)[5]
  • 친족 : 대복모(大福謨)
  • 친족 : 대복예(大福譽)
  • 친족 : 대화균(太和鈞)
  • 친족 : 대원균(太元鈞)

대광현이 등장하는 작품편집

같이 보기편집

  1. 고려사에 "대광현은 발해국의 세자"라 했으니 말왕(末王)인 대인선의 아들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2. 협계 태씨, 영순 태씨의 족보에서는 태조가 그에게 태씨(太氏) 성을 하사했다고 전한다. 남원 태씨, 나주 태씨, 밀양 대씨 모두 그에게서 분파된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3. 대한민국의 태씨(太氏)와 대씨(大氏)는 대광현을 시조(始祖)로 본다.
  4. 대봉예(大封裔)로 추정된다.
  5. 고려사고려사절요에서는 대광현이 발해의 세자라고만 전하고 그 부왕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6. 고려사고려사절요에서 성종현종 시기에 대도수(大道秀)의 기록이 보이는데, 한국의 태씨 족보에서는 대도수가 대광현의 아들이라 한다.
  7. 대광현의 고려 귀부(925년 또는 934년)와 대도수의 활동(993년 안융진전투 때 중랑장으로 참전) 시기를 보면 60년의 차이가 나므로 부자간이 아니라 조손간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8. 정약용은 저서 발해속고(渤海續考)에서 대광현은 대인선의 세자가 아니고 발해국 멸망 후 유민과 함께 약 10년간 항거하다가 소식이 끊긴 그의 아우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