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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선거

1981년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선거대통령 선거인단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을 선출한 선거이다. 2월 11일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대통령 선거인들이 선출돼고, 이 선거인들은 2월 25일 각 지역별로 지정된 77곳의 투표소에 모여서 투표해 전두환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대통령 선거 당일 재적 선거인 수는 5,277명으로,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투표수는 2,639표였다.[1]

대한민국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선거

1980년 ←
1981년 2월 25일
→ 1987년

재적 선거인단 수 5,277명
당선을 위해 2,639표 필요
투표율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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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전두환 유치송
정당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득표수 4,755 404
득표율 90.1% 7.7%

선거전 대통령

전두환
민주정의당

대통령 당선자

전두환
민주정의당

대한민국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선거인 선거

1981년 2월 11일

선출의석: 5,278석
과반의석: 2,640석
투표율 78.1%
  제1당 제2당
  Chun Doo-hwan 1981-02-04.jpg Male portrait placeholder cropped.jpg
지도자 전두환
총재
유치송
총재
정당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획득한 의석수 3,667석 411석
득표수 9,250,262 1,778,007
득표율 60.71% 11.67%

예상 대통령 당선자

전두환
민주정의당

목차

배경편집

1980년 전두환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유신헌법 대신 새로운 헌법인 제5공화국 헌법을 마련해 국민투표로 확정했다.

헌법의 핵심은 10월 유신의 저항점인 1인 영구집권식 선거 방식 대신 7년 단임제로 변화인식을 주었으나 확고한 계승을 담보하기 위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변형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출제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과 달리 야당을 포함한 정당 소속 후보 출마를 허용해 외형상으로나마 민주적 제도를 갖췄다.

정당 공천제편집

선거인단 선거에는 정당 공천제가 도입되지 않았으므로 선거인 후보로 등록하려면 당적 여부에 상관 없이 선거권자 100~150명(인구 5천 명 미만의 선거구는 50~70명)의 추천을 받아야 했다.

반면 대통령 선거에는 정당 공천제가 시행되었다. 정당 공천으로 입후보하는 경우 대통령 선거 공고일로부터 7일 안에 공천장과 승낙서를 제출하면 되었으며, 무소속 후보의 경우 대통령 선거인 선거일로부터 7일 안에 대통령 선거인 300~500명의 추천장을 제출하면 되었다.

대통령 선거에는 정당 소속 후보들이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후보 등록을 할 수 있게 한 데 반해 대통령 선거인 선거만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도 무소속 출마와 똑같이 주민 추천서를 얻어야 하도록 한 것에 대해 정부 측은 군소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일각에선 선거인 선거 출마 요건을 어렵게 만들어 반여 성향의 후보들이 나오는 걸 막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선거인 선거 입후보 상황편집

선거인 후보는 정당 공천으로 입후보되는 게 아니라 유권자 추천을 받아 입후보하는 방식이었으나, 각 후보는 자신의 소속 정당을 후보 등록 서류에 밝히게 돼있어 각 정당별 입후보자 수가 드러났다. 민주정의당은 입후보자가 너무 많아서 독식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몇몇 후보들에게 압력을 넣어 사퇴시키기까지 한 반면, 야당은 후보를 구하는 것도 후보 추천을 해줄 주민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2][3] 제1야당인 민주한국당은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2,640명에서 한참 모자라는 1,165명을 공천해 소속 선거인 후보들이 전부 당선돼도 당선정족수에 미달되게 됐다. 반면 민주정의당은 4,928명의 후보를 낸데다 2,951명의 무소속 후보들 역시 대부분 전두환 후보를 지지해 승리가 확실했다.

정수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민권당 민주사회당 무소속
서울 856 753 199 18 29 0 482
부산 324 277 66 3 5 0 153
경기 670 713 221 8 16 0 252
강원 299 293 82 12 3 0 206
충북 256 270 74 18 5 1 105
충남 465 428 121 34 9 0 173
전북 407 387 95 05 619 0 220
전남 606 516 118 29 6 0 386
경북 755 664 2688 1 0 0 626
경남 587 578 97 9 9 0 322
제주 53 49 4 0 0 0 26
합계 5,278 4,928 1,165 137 101 1 2,951

대통령 후보편집

민사당, 사회당, 신정당 등은 당선 가능성이 없다며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가운데,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민권당 등 총 4당이 대통령 후보를 내었다.[4] 그러나 애초에 야당들은 선거인 후보도 일부 밖에 내지 못한 만큼, 대통령 당선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5]

민주정의당편집

12·12 쿠데타 이후 정국의 중심으로 부상한 신군부 세력은 1월 15일 민주정의당을 창당하고 전두환 대통령을 총재 및 제12대 대선 후보로 추대했다. 민정당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물 등 "새롭다"는 말을 강조, 자신들이 정치 신인들이라는 점을 홍보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민주한국당편집

신민당, 민주통일당 등 야당은 1980년 5·17 조치로 정치 활동이 금지된데 이어 그해 10월 제5공화국 헌법 제정 후론 아예 강제 해산됐었다. 그러나 11월 25일 정치 활동 금지 조치를 당했던 야당 인사들이 대거 해금되며 당 재건에 착수하게 되었다. 해금 전 야권 신당 창당 작업은 한영수·고재청·유한열 등 3명의 전 신민당 의원들이 주도했는데, 이들은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야당 측 의원으로 참여한 터라 어느 정도 활동이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당초 신당은 역시 입법회의에 참여해 부의장을 맡고 있던 채문식 전 신민당 의원을 당수로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채 의원이 야당을 버리고 민주정의당행을 선택하면서 유치송 전 신민당 최고위원이 새 당수 후보로 부상했다.[6] 민주당계 정당의 강력한 주주인 진산계 소속이라 전통 보수 야당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 신민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냈음에도 김대중·김영삼 어느 한쪽 편에도 속한 적이 없어 새로운 정치 시대를 이끌어갈 리더로 적합하다는 점에서 유 전 위원은 해금되기 전부터 당수 후보로 지목됐다. 신당 내에서 초계파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유 전 위원은 결국 1월 17일 민주한국당 창당 대회에서 총재 및 제12대 대선 후보로 추대됐다.

민한당은 유치송 후보가 해공 신익희의 비서로 정치를 시작한 것을 부각시키는 등 민주한국당만이 정통 보수 야당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5·18 광주 민간인 학살 사건을 가리켜 전두환의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한 충격적 시련이었다며 여당 견제론을 펼쳤다.

그러나 야권 인사들이 기대보다 많이 해금되지 않아 당 조직 재건에 어려움을 겪었고, 자금난과 인물난으로 제대로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또한 선거인을 입후보시키려면 필요한 주민 추천장을 받을 때도 사람들이 야당 후보에게 추천장을 써주는 것을 꺼려해, 많은 지역에서는 선거인 후보를 내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한국국민당편집

박정희 정부의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유신정우회 출신의 김종철·양찬우·김용호·이만섭·고재필·윤인식·김영광 등 역시 해금과 함께 구 여당 재건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렇게 창당된 한국국민당은 민주공화당의 당 조직과 재산, 직원들을 신군부에서 고스란히 가져가버려 조직 재건에 애를 먹었고, 당세가 약해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했으나, 결국 1월 23일 김종철 전 의원을 총재 및 제12대 대선 후보로 추대하며 창당됐다.

국민당은 민주공화당 시절 이미 한 번 집권해본 경험과 여당 시절 조국 근대화를 이루어낸 것을 내세워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같은 군부 정당인 민주정의당에 당세에서 밀리고, 구태 및 독재 잔당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선거전 내내 민정·민한 양당에 크게 뒤지는 모양새였다.

민권당편집

민한당의 온건 야당 노선에 비판적인 야권 인사들은 선명 야당론을 주장하며 1월 23일 민권당을 창당하고 김의택 전 의원을 총재 및 제12대 대선 후보로 추대했다.

선거운동편집

선거인 후보들은 선거 벽보에 신상 정보와 경력 외에 그 어떤 정견 및 공약도 게재할 수 없었으며, 선거공보에는 다른 내용을 쓸 수 있었지만 1,000자를 넘으면 안 되는 등,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다만 합동연설회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 연설은 할 수 있었다.[7]

선거인단 선거 결과편집

선거인단 선거 투표지엔 후보자의 정당이 표시되지 않아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혼란을 겪었다.[4]

민주정의당이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2,640석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함으로서 전두환 민정당 대선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었다.[8]

정당 득표수 득표율 의석수
민주정의당 9,250,262 60.7 3,667
민주한국당 1,778,007 11.7 411
한국국민당 174,708 1.1 49
민권당 124,215 0.8 19
민주사회당 825 0.0 0
무소속 3,909,821 25.7 1,132
합계 15,237,838 100 5,278

지역별 의석수편집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민권당 민주사회당 무소속
서울 551 137 4 7 0 157 856
부산 234 33 2 0 0 55 324
경기 545 44 3 3 0 75 670
강원 240 4 3 0 0 52 299
충북 207 13 3 0 0 33 256
충남 338 42 10 0 0 75 465
전북 291 26 0 6 0 84 407
전남 351 51 20 1 0 183 606
경북 449 26 0 0 0 280 755
경남 420 34 4 2 0 127 587
제주 41 1 0 0 0 11 53
전체 3,667 411 49 19 0 1,132 5,278

지역별 득표율편집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민권당 민주사회당 무소속
서울 1,918,215 56.5 540,552 15.9 29,647 0.9 48,868 1.4 0 0.0 857,442 25.3 3,394,724
부산 799,981 63.8 148,403 11.8 9,397 0.7 4,491 0.4 0 0.0 291,745 23.3 1,254,017
경기 1,361,727 69.0 283,184 14.4 12,297 0.6 17,937 0.9 0 0 297,622 15.1 1,972,767
강원 523,467 64.2 75,430 9.3 15,716 1.9 1,932 0.2 0 0 199,444 24.4 815,989
충북 423,375 65.8 77,118 12.0 20,920 3.3 3,993 0.6 825 0.1 117,071 18.2 643,302
충남 669,381 63.0 133,964 12.6 35,604 3.3 8,121 0.8 0 0 216,173 20.3 1,063,248
전북 607,747 62.6 106,700 11.0 4,552 0.5 24,520 2.5 0 0 227,064 23.4 970,583
전남 763,293 52.2 160,666 11.0 34,406 2.3 6,120 0.4 0 0 498,328 34.1 1,462,813
경북 1,249,107 57.5 125,530 5.8 803 0.0 0 0 0 0 797,702 36.7 2,173,142
경남 815,478 62.1 116,802 8.9 11,366 0.9 8,233 0.6 0 0 361,358 27.5 1,313,237
제주 118,491 68.1 9,658 5.5 0 0 0 0 0 0 45,872 26.4 174,021
전체 9,250,262 60.7 1,778,007 11.7 174,708 1.1 124,215 0.8 825 0.0 3,909,821 25.7 15,237,838

유명인 당선자편집

선거인단 선거에선 기업인이나 정치인 출신 후보들이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대거 당선됐다. 정주영, 구자경, 최종환 등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은 선거인도 있는가 하면 조중훈, 배의환, 김일환, 홍성철 등 선거 운동 기간 중 적극적으로 전두환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 제1선거구: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무소속; 1위),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무소속; 2위)

서울 종로구 제3선거구: 구자경 럭키그룹 회장 (무소속; 1위), 최종환 삼환기업 회장 (무소속; 2위)

서울 중구 제2선거구: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민주정의당; 1위)

서울 용산구 제1선거구: 김일환내무부 장관 (무소속; 1위)

서울 마포구 제6선거구: 김원기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무소속; 무투표 당선)

서울 강남구 제2선거구: 유양수 전 동력자원부 장관 (무소속; 1위)

서울 강남구 제3선거구: 홍성철내무부 장관 (무소속; 1위)

서울 강남구 제6선거구: 배덕진 전 체신부 장관 (무소속; 1위)

서울 강동구 제10선거구: 배의환한국은행 총재 (무소속; 2위)

서울 영등포구 제2선거구: 황정연해군참모총장 (무소속; 무투표 당선)

전북 이리시 제2선거구: 이춘기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장 (무소속; 1위)

대통령 선거 결과편집

당초 선거인단은 5,278명이었으나, 부산 동래구 제7선거구에서 당선된 민주정의당 김창식 선거인이 2월 19일 당선이 취소되어 5,277명이 됐다.[8]

후보 정당 득표수 득표율 비고
전두환 민주정의당 4,755 90.11%   당선
유치송 민주한국당 404 7.66%
김종철 한국국민당 85 1.61%
김의택 민권당 26 0.49%
무효 1 0.02%
기권 6 0.11%
재석 5,277 100%

지역별 결과편집

민주정의당의 전두환 후보는 4,755표, 민한당의 유치송 후보는 404표(7.7%), 국민당의 김종철 후보는 85표(1.6%), 민권당의 김의택 후보는 26표(0.5%)를 득표하였다.[1] 전두환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율을 얻은 지역은 제주도로 98%였고, 강원도는 97.7%, 경상북도는 95.9%, 충청북도와 경상남도는 93%였으며 서울은 82.2%였다.[1]

전두환 유치송 김종철 김의택 무효 기권
서울 703 133 11 8 0 1 856
부산 285 33 3 0 0 2 323
경기 620 43 4 3 0 0 670
강원 292 4 3 0 0 0 299
충북 238 14 4 0 0 0 256
충남 406 41 18 0 0 0 465
전북 369 25 3 7 1 2 407
전남 521 51 28 6 0 0 606
경북 723 29 2 0 0 1 755
경남 546 30 9 2 0 0 587
제주 52 1 0 0 0 0 53
합계 4,755 404 85 26 1 6 5,277

제5공화국 헌법 부칙 제3조에 따라 전두환의 제12대 대통령의 임기는 당선자가 발표된 즉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취임식은 3월 3일에 치러졌다.

투표 불참 선거인편집

선거 당일, 당선이 취소된 민정당 김창식 선거인을 제외한 5,277명의 재적 선거인 중 4명은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고 2명이 풍랑으로 섬에 발이 묶여 총 6명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였다.[9]

기권 선거인 명단
이름 정당 선거구 이유
경규복 민정당 서울 강서구 제6선거구 구속
서일도 무소속 부산 동래구 제8선거구 구속
배종환 민정당 부산 남구 제8선거구 구속
박삼술 민정당 경북 대구시 서구 제2선거구 구속
이수영 민정당 전북 부안군 위도면 풍랑
송성섭 무소속 전북 부안군 위도면 풍랑

각주편집

  1. "전두환 후보 12대 대통령에 당선", 동아일보 1981년 02월 25일자, 1면 정치면
  2. “포식과 허기와”. 《중앙일보》. 1981년 1월 31일. 2019년 3월 28일에 확인함. 
  3. 지면보기, 입력 1981 01 20 00:00 | 종합 2면 (1981년 1월 20일). “대통령후보 몇 명이나 나올까|민정·민한당 「후보」확정|신정·민사선 불참 선언… 잘해야 삼파전”. 2019년 3월 28일에 확인함. 
  4. 대한민국 정당사 제3집.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92.
  5. 대한민국 선거사 제4집-제6집.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09.
  6.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5월 11일에 확인함. 
  7. 대한민국 선거사 제4집.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09.
  8. 제12대 대통령 선거 총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85.
  9. 지면보기, 입력 1981 02 25 00:00 종합 2면 (1981년 2월 25일). “구속4명…백%투표 무산”. 2019년 4월 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