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라디오21은 원래는 2002년 11월 3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노무현(盧武鉉)을 지지하는 방송국 노무현 라디오으로 개국하였다. 여의도 대하빌딩 노무현 후보 대선 캠프에 개설된 노무현 라디오는 Radio Roe는 선거 기간 내내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하루 2시간 생방송이었으나, 4시간·8시간을 거쳐 선거 전날과 선거 당일인 같은 해 12월 18일과 12월 19일에는 철야 방송을 한다.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가 성사되던 밤에 다음 날 새벽까지 축하 방송을 이어갔고, 정 대표의 노 후보 지지 철회가 있던 밤에는 명계남, 문성근 과 함께 눈물의 방송, 조선일보 무단살포 감시 방송으로 시대를 고민하던 이들의 벗 역할을 했으며 노무현후보가 당선 되고 가장 먼저 첫 인터뷰를 함으로써 화제가 되기도 한다.

‘노무현 라디오’는 이후 많은 네티즌의 공모를 통해 '라디오21'로 이름을 바꾸고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방송으로 상업 법인화되었다. 2003년 2월 21일 다시 새로운 인터넷 방송국 '라디오21'로 확정한 뒤, 개국하였으며 계속해서 탄핵과 총선 정국에서 친노방송으로서 한 길을 간다. 그리고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광우병 촛불을 맨 먼저 인터넷 생중계함으로써 인터넷방송의 신기원을 이루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당당하게 진보의 정신과 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12월 20일 방송이 종료되었다가 2018년 9월 13일 재방송을 목표로 시험 방송 중이다.

목차

역사(개요)편집

라디오21은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 방송으로 200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후보 대선 홍보방송으로 시작한 노무현 라디오, Radio Roe의 법인명이자 방송국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 후 라디오 운동을 사회의 전 분야에 걸친 개혁의 동력으로 쓰자는 몇몇 뜻있는 사람들 (문성근, 명계남, 김갑수, 유시민, 이승교, 강헌, 임찬규, 양경숙, 이정열, 손병휘 등 등 친노 문화계 인사들)이 십시일반 의지를 모아 2003년 1월 새로운 인터넷 방송국 개국을 위한 주비 모임을 결성한다.

  • 1월 22일 라디오21은 준비기획단을 구성한 뒤, 기술적인 테스트를 위해 하루 2시간의 임시 방송을 시작했고,
  • 1월 28일 여의도에 사무실을 개소하였으며,
  • 2월 10일 공모를 통해 새로운 방송국 이름을 현재의 명칭으로 확정한 뒤에 메인 스튜디오와 보조 스튜디오 세팅을 거쳐
  • 2월 21일 정식 개국했다.

라디오21은 개혁과 통일을 지향하고 국민의 방송,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위한 방송으로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구현'을 목표로 매일 17시간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해외 청취자들을 위해 24시간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1][2][3]

목표편집

한국 최초의 상업 인터넷 라디오 방송으로,

  1. 다양하고 수준 높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한 네티즌의 동반자,
  2. 새로운 방식의 재미 있는 시사 방송,
  3.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구축하는 국민의 방송, 글로벌 방송,
  4. 청취자의 비판과 질책을 수용하며 국민과 대화하는 열린 방송,
  5. 개혁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담아 내는 앞서 가는 방송,
  6. 사회의 각종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위하는 방송을 지향한다.

현황편집

  • 라디오21의 방송권역은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면 세계 모든 곳을 가청·가독 권역으로 삼는다.
  • 콘텐츠 프로그램 중심의 TV방송 채널 1개, 종합편성 1개과 음악전문 1개 등 라디오 채널 2개, 텍스트와 멀티미디어 중심의 뉴스 채널 1개 등

3개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다.

  • 방송사옥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3-2번지 삼보빌딩 7층과 8층에 위치한다.
  • 세개의 스튜디오와 300여명이 참관할 수 있는 생방송 홀을 보유하고 있다.
  • 시민의 참여와 후원 그리고 광고로 운영되고 있다.

조직편집

시청률 및 청취율편집

랭키닷컴 통계 1시간 당 15~30만명의 네티즌이 동시접속하고 있으며 1일 150~300만정도의 네티즌이 라디오21을 청취한다. 김승형 《라디오 21》관리팀장에 의하면 2008년 6월 현재 "기성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 집회 현장의 실황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으며 촛불시위 생중계를 시작한 이후 동시접속 100만명을 할 수 있는 서버가 한 두 차례씩 서버가 다운될 정도다.[5][6]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네이버 백과사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성연철. 21일 개국한 ‘라디오21’은?. 한겨레신문. 2003년 2월 27일.
  3. '오마이뉴스' 슈퍼파워에 언론제국들 "오 마이 갓". 주간한국. 2003년 3월 14일.
  4. 안용규. '라디오21' 새 대표이사에 명계남씨. 조선일보. 2004년 9월 3일.
  5. 백혜영. 촛불이 ‘미디어 지형’ 바꾼다 . PD저널. 2008년 6월 4일.
  6. 김보협. 지금은 개념 구라 전성시대. 한겨레21. 2011년 10월 3일(제 879호).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