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신

류청신(柳淸臣, 1257년 ~ 1329년)은 고려의 관리다.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초명은 류비(柳庇)이다. 충선왕 때 정승(政丞)에 오르고, 고흥부원군(高興府院君) 책봉되었다. 시호(諡號)는 영밀(英密)이다.

류청신
柳淸臣
고려중서문하성 문하시중 겸 대리집정공
임기 1311년 3월 1일 ~ 1312년 2월 29일
군주 고려 충선왕 왕장
신상정보
출생일 1257년
출생지 고려 전라도 장흥부 고이부곡(高伊部曲)
(現 대한민국 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
사망일 1329년 (73세)
사망지 원나라 둥베이 만저우 지방 랴오닝 성 선양
본관 고흥(高興)
경력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정당 무소속
자녀 류유기(아들)
친인척 김성우(사위)
별명 아명(兒名) 류비(柳庇)
시호(諡號) 영밀(英密)

생애편집

전라도 장흥부 고이부곡(高伊部曲)에서 출생했으며, 선대는 대대로 고이부곡의 부곡리(部曲吏)였다. 국가 제도상 부곡리는 비록 공적이 있어도 5품 이상 승진할 수 없었는데, 류청신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담력이 있었으며 몽골어를 배워 누차 사신을 따라 원나라에서 응대를 잘 했으며, 이후 계속되는 활약으로 충렬왕의 신임을 얻어 낭장에 임명되었다.

1294년(충렬왕 20) 우승지, 1296년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거쳐 1297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감찰대부(監察大夫)에 임명되었으며, 인후(印侯)와 함께 원나라에 파견되어 충렬왕의 전위표(傳位表)를 전달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광정원부사(光政院副使)로서 참지기무(參知機務)를 겸했고,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충렬왕이 복위하고 인후 등에 의해 한희유 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압송되고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복직되어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올랐다.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던 충선왕의 환국을 위해 노력하다가 1307년 충선왕이 실권을 장악하자 도첨의찬성사·판군부사사(判軍簿司事)로 중용되었다. 이 때 원나라 황제로부터 청신이라는 이름을 받아 개명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정승에 임명되고 고흥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곧 도첨의찬성사 고흥군으로 강등되었지만 1313년에 다시 정승에 올라 1321년(충숙왕 8)까지 재임하였다. 충숙왕을 따라 원나라에 머무르며 심왕옹립운동에 참여했으며, 입성책동(立省策動)을 주장했다.[1]

가족 관계편집

  • 아들 : 류유기(柳攸基 또는 有奇) - 판밀직사.
    • 손자 : 류탁(柳濯) - 공민왕 때의 좌정승.
  • 딸 : 고흥 류씨(柳氏)
  • 사위 : 김성우(金成雨) - 김해인. 대제학. 천리장성 축적 공으로 상과 작위를 받았다.
    • 외손자 : 김일서(金一曙) - 좌사위대부, 대제학. 요나라 사절(使節).

각주편집

틀:고려의 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