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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송 윤씨(茂松 尹氏)는 전라북도 고창군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무송 윤씨(茂松 尹氏)
관향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
시조 윤양비(尹良庇)
주요 인물 윤택, 윤소종, 윤회, 윤자운, 윤형, 공회빈 윤씨, 윤항열, 윤영오, 윤석헌, 윤영선
인구(2015년) 14,572명

목차

역사편집

무송 윤씨(茂松尹氏) 시조 윤양비(尹良庇)는 고려 예종 때 현리(縣吏)로서 등과하여 보승낭장(保勝郎將)과 호장동정(戶長同正)을 지냈다. 윤양비의 묘는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있다.

무송 윤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7명을 배출하였다.[1]

본관편집

무송(茂松)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있던 옛 행정구역명이다. 무장면은 무송과 장사(長沙)가 합쳐진 이름이다. 백제 때에는 송미지현(松彌知縣)과 상로현(上老縣)이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무송과 장사현으로 개명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두 현을 통합하여 무장현(茂長縣)으로 개편하였다. 1906년에 전라북도로 소속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무장군이 폐지되고 무장면으로 축소되어 고창군에 편입되었다.

인물편집

  • 윤택(澤, 1289년 ~ 1370년) : 윤비의 증손. 고려 때 정당문학, 첨의찬성사를 지냈다.
  • 윤소종(尹紹宗, 1345년 ~ 1393년) : 윤택의 손자. 1360년(고려 공민왕 9) 성균시에 합격했고, 춘추수찬(春秋修撰)을 배수받았다. 1379년(고려 우왕 5) 전교시승(典校寺丞)·전의부령(典儀副令)·예문응교를 지내고, 1386년 성균사예로 기용되었으며, 조선이 개창되자 병조전서(兵曹典書)로 회군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 윤회(尹淮, 1380년 ~ 1436년) : 윤소중의 아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좌정언, 이조 · 병조 좌랑 등을 역임하고, 1417년에는 승정원의 대언(代言)이 되어 왕을 보좌하였다. 이때에 태종은 그의 학문과 재질을 높이 평가하여, 병조참의로 승진시켰다. 1420년(세종 2)에 집현전이 설치되자 1422년에 부제학으로 발탁되었다. 그 뒤로 한때 동지우군총제(同知右軍摠制)에 임명된 적도 있었지만, 주로 예문관제학 · 대제학과 같은 문한직(文翰職)을 역임하였다.
  • 윤자운(尹子雲, 1416년 ~ 1478년) : 윤회의 손자. 1469년 우의정, 이듬해 영의정으로 승진하였다. 성종이 즉위하자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무송부원군 겸 예조판서(茂松府院君兼禮曹判書)에 봉해졌다.
  • 윤형(尹泂, 1549년 ~ 1614년) : 윤자운의 5세손. 1586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공조판서·호조판서·판중추부사·판의금부사·경기감사 등을 지내고, 1611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으로 무성부원군(茂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 윤석헌(尹碩憲, 1948년 ~ ) : 제13대 금융감독원장
  • 윤영선(尹永善, 1956년 ~ ) : 제24대 관세청장

인구편집

  • 1985년 2,470가구, 10,320명
  • 2000년 4,119가구, 13,384명
  • 2015년 14,572명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