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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朴訔, 1370년 ~ 1422년)은 고려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앙지(仰止), 호는 조은(釣隱), 시호는 평도(平度)이다. 박상충(朴尙衷)의 아들이고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생질이며 이종학(李種學)의 고종사촌 동생이다.

생애편집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1386년 개성부 소윤(少尹)이 되었다.

1392년에 조선 개국 후 지금주사(知錦州事)·좌보궐·지영주사(知永州事)·사헌시사·지춘주부사(知春州府事)·사헌중승·판사수감사(判事水監事)를 지냈다. 조선 태종의 잠저(潛邸) 시절에 서로 의기가 상통하여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에 태종을 도와 공을 세우고, 이 해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3등으로 반남군(潘南君)에 봉해졌다.

강원도 도관찰척사(江原道都觀察黜陟士)를 비롯하여 한성부윤(漢城府尹)·승추부제학(承樞府提學)·계림윤(鷄林尹)·전라도 관찰사·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겸 대사헌을 거쳐 서북면 도순문찰리사(都巡文察里使)·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병조판서·대사헌·호조판서를 역임한 뒤 1412년 금천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했을 때 신장(訊杖)의 정수(定數)를 1차에 30으로 정하여 실시케 했고, 이조판서·판우군도총제부사(判友軍都摠制府事)를 거쳐 1416년(태종 16) 우의정 겸 판이조사(判吏曹事)를 지낸 뒤 금천 부원군(錦川府院君)에 진봉(進封)되었다. 이후에는 좌의정으로 승진했다. 세종 즉위 후에 강상인의 옥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 부인 : 주언방(周彦邦)의 딸
      • 장남 : 박규(朴葵)[1]
        • 장손: 박병문
        • 차손: 박병균[2]
      • 차남 : 박강(朴薑)
        • 손자 : 박치(朴䎩)
      • 삼남 : 박훤(朴萱)
        • 손자 : 박숭질(朴崇質)
      • 장녀 : 윤구(尹救)에게 출가
      • 차녀 : 김윤(金潤)에게 출가
      • 삼녀 : 이중(李重)에게 출가
      • 사녀 : 어효첨(魚孝瞻)에게 출가

묘소편집

《평도공 박은 묘역》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당동리 산57-1에 있다. 2007년 2월 22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25호로 지정되었다.

관련 작품편집

각주편집

  1. 시호는 참판(參判)으로 호장공(羅州潘南戶長) 朴應珠의 7世孫이다.
  2. 시호는 판관(判官)으로 영남에 거주하는 반남박씨 가문의 일족이 거의 판관공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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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유정현
제4대 좌의정
1416년 - 1421년
후임
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