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Sienic/작업실10
선율과 그 기원
편집독일 국가의 역사는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인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이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왕이었던 프란츠 1세의 생일을 기념하여 1797년 2월 12일에 〈황제 찬가〉를 각곡했는데, 훗날 이 곡은 오스트리아의 시인 로렌츠 레오폴트 하슈카(독일어: Lorenz Leopold Haschka, 1749-1827)의 가사 "하느님, 프란츠 황제를 지켜 주시옵소서. (Gott erhalte Franz,den Kaiser)"로 바뀌어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가(國歌)나 공식행사에서 자주 사용되거나 불려졌다. 이 노래의 선율은 하이든이 1796년~1797년에 작곡한 황제 사중주(Op.76의 3)의 제2악장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황제가 바뀔 때마다 프란츠 부분을 페르디난트로 바꿔부르는 등 여러 변형을 거쳐왔다. 그러나 1918년 11월 11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오스트리아에서는 1929년에 선율은 부활하고 가사만 바꾼 것을 국가로 정했다. 이것은 1946년까지 이어졌으며, 현재는 산의 나라, 강의 나라를 부른다.
역사적인 배경
편집독일의 여러 제후령에서 일어난 1848년의 민주화 혁명의 태동기인 1841년에 민족주의적인 시인이자 대학 교수였던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독일어: August Heinrich Hoffmann von Fallersleben)이 이 선율을 사용하면서 독일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가사를 썼다.
호프만의 노래
편집노래 & 가사
편집독일어 가사 | 한국어 독음 | 한국어 번역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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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
편집1945년 이전까지의 '독일인의 노래'
편집독일의 국가(독일어: Nationalhymne)는 "Prinz Eugen,der edle Ritter(오이겐 왕자, 고귀한 기사)"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노래는 1683년에 선율이 생기고, 작사자가 미상인 채로 1717년(또는 1719년) 터키와의 벨그라드(Belgrad) 공방전 때 불리었다. 그 이후 하이든 작곡(팔러슬레벤 작사)의 이 노래를 포함해 3~4가지의 각각 다른 작곡자(및 각각 다른 가사)의 노래들이 불리다가, 1922년 8월 11일 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독일어: Friedrich Ebert)가 하이든 작곡, 팔러슬레벤 작사의 노래를 국가로 선포했다. 1945년 5월 7일에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할 때까지는 독일, 가장 뛰어난 독일(독일어: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베어 알레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한편, 아돌프 히틀러 치하에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가(黨歌)가 Horst-Wessel-Lied(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또는 깃발을 높이 올려라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국가에 준하는 대우를 받기도 했다.
1945년 이후의 '독일인의 노래'
편집제2차 세계대전의 1945년 패전 이후, 독일에서는 한동안 국가가 없었으나 1952년에 1절과 2절이 금지되는 조건을 달고 국가로서 부활했다.
1절 가사는 1848년 작사 당시 게르만 문화가 퍼져 있는 범위를 경계선으로 하는 통일 국가 개념을 우위에 놓자는 호소였지만,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은 이를 독일 팽창주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해석했고 일부 사람들은 독일의 유럽 대륙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잘못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1절은 금지된 것이다. 하지만, 일부 네오나치 세력들은 지금도 1절을 부르고 있다.
1990년 동독과 통일한 뒤 새로운 국가 지정에 관한 논란이 오가기도 했지만, 결국 흡수통일의 주체였던 서독 측의 국가만이 인정되어 지금도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