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일(徐白日, 1888년 ~ 1966년)은 사이비 종교용화교의 창시자이다. 본명은 서한춘(徐漢春)이며, 호는 진공(眞空), 현무(玄武)이다. 1947년에 전북 김제시 모악산에 용화사라는 절을 지어 본부로 삼았다. 금품갈취, 횡령, 여신도 성폭행 등을 자행했음이 1962년에 드러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스님 흉내를 냈으나 신앙대상인 교조는 증산 강일순이었다. 일각에서는 교주 서백일을 두고 백백교 잔당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용화교 역시 광복 즈음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교세가 확산했다. 여자들을 출가시켜 여수좌라고 불렀다. 여수좌는 500여 명에 달했는데 사실상 서백일의 첩이었다. 서백일은 교리를 빙자해 여수좌들을 간음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등 사이비 종교 사기 행각을 벌였다.[1]

1966년 3월 27일, 신도였던 소윤하가 찌른 칼에 사망했다.[2]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데일리 굿뉴스] 사회적 물의 일으킨 이단들
  2. [경향신문] 교주의 죽음......용화교는 미륵불을 내세운 증산교의 일파로 1931년 서백일이 창시한 종교다. 교리를 빙자해 금품을 갈취하고, 여신도들과의 추문으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서백일은 1966년 신도의 칼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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