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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金杞泰, 1969년 5월 23일 - )는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내야수이자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 감독이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신생팀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입단한 이래 팀의 중심 타자로 맹활약해 2011년 KBO 리그 레전드 올스타 지명타자 부문에 선정됐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재정난으로 1999년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했다가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과의 불화로 2001년 시즌 후 6:2 현금 트레이드돼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2005년에 은퇴했다. 2008년 ~ 200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타격코치와 이스턴 리그 퓨처스 팀 감독으로 활동했다.

김기태
Kim Ki-Tae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9년 5월 23일(1969-05-23) (50세)
출신지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신장 180 cm
체중 8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1루수, 외야수, 지명타자
프로 입단 연도 1991년
드래프트 순위 1991년 특별우선지명(쌍방울 레이더스)
첫 출장 KBO / 1991년 4월 11일
대전빙그레
마지막 경기 KBO / 2005년 10월 6일
대전한화
획득 타이틀
계약금 5억원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년 시드니
아시안게임 1990년 베이징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선수 시절편집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편집

1991년 인하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신생 팀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1991년에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내야수였지만 현역 시절엔 붙박이 지명타자로 나왔으며, 1992년 ~ 1994년까지 3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1991년 데뷔 첫 해 2할대 타율, 27홈런, 95타점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으나, 같은 팀 투수 조규제에게 밀려 신인왕 수상에 실패했다. 1992년에는 3할대 타율, 31홈런으로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와 출루율 1위를 기록했고, 1994년에는 25홈런으로 좌타자로는 첫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7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고 1996년1997년에 팀의 중심 타자로서 팀의 2차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끈다. 그러나 모기업인 쌍방울이 IMF 사태로 부도 처리돼 재정난을 겪게 되자 그는 1999년 팀의 핵심 불펜 투수였던 김현욱과 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양용모, 이계성과의 2:2 현금 트레이드(20억원)로 이적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그는 같은 해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된 양준혁을 대신해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1999년에 2할대 타율, 28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해 같은 팀 1루수 이승엽과 함께 중심 타선을 이끌며 국가대표팀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하지만 2001년에는 시드니 올림픽 때 함께했던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과의 불화[1] 로 출장 경기 수가 크게 감소했고, 홈런도 기록하지 못한 채 타율도 1할대로 급추락했다. 또 2001년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1 시즌 후 SK 와이번스와의 6:2 현금 트레이드(그, 정경배, 김태한, 이용훈, 김동수, 김상진 <-> 브리토, 오상민 + 현금 11억)돼 이적했다. 이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빅 딜이었고, 팀이 현금 11억을 받아 당시 FA를 선언했지만 팀을 찾지 못했던 양준혁을 다시 데려왔다.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6:2 현금 트레이드로 예전 쌍방울 선수단을 승계한 팀으로 돌아온 그는 나이가 들며 전성기 때의 타격은 나오지 않았지만 꾸준히 팀의 중심 타선을 이끌었다. 그는 2004년에 마지막 3할 타율, 10홈런, 67타점으로 현역 마지막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03년에는 준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데뷔 후 첫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5년 그는 15년 간의 선수 생활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한신 타이거스에서 연수를 받다가 팀이 코치진 대개편을 해 연수 일정을 조정하고 조기 귀국했다.[2] 귀국 후 2006년 시즌 팀의 타격보조코치를 맡았다. 시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육성군 지도자 연수를 갔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연수 후 2008년 요미우리의 타격코치로 임명돼 2009년까지 코치로 활동한 후 당시 감독이었던 박종훈의 요청으로 귀국해 2010년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됐다. 동메달을 획득했던 시드니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코치진으로 올림픽에 돌아와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활동하며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2011년 7월 30일 LG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수석코치로 임명됐고, 박종훈이 성적 부진으로 시즌 최종전에 사임하자 2011년 10월 7일 후임 감독으로 선임됐다. 붙박이 지명타자로 뛰었던 선수 출신으로는 드물게 감독이 됐다.[3]

감독 시절편집

LG 트윈스 감독 시절편집

그러나 LG의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FA였던 송신영, 조인성, 이택근을 잃었고, 2012 시즌 시작 전 승부조작 사건으로 투수 박현준김성현마저 잃어 전력 출혈이 크게 발생한 채 시즌을 시작했다. 2012년 9월 12일 SK전에서 팀의 에러 연발과 SK 선발 투수 윤희상의 공을 공략하지 못해 3:0으로 끌려갔으나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4번 타자 정성훈이 상대 투수 이재영을 상대로 2루타를 쳐 내 추격했다. 그러나 상대 팀 SK가 마무리 투수 정우람을 등판시키자 이에 분개해 타석에 올라온 5번 타자 박용택을 내리고 신인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타석에 올려 스탠딩 4구 삼진을 당하게 하고 경기를 마친 후, 전화기를 꺼 둔 채 잠적했다. 다음 날 경기 중 대타를 기용한 것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SK가 팀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답변했다.[4] 이 사건으로 그는 KBO로부터 벌금 500만원과 엄중 경고 처분을 받았다.[5] 이 사건으로 팬들 사이에서 "포기태"라고 불렸다. 2012년 시즌 7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가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 이후 선수단 사이에서 야구 외적인 잡음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6] 2013년에는 2002년 이후 팀의 상승세가 뛰어나서 팬들로부터 "갓기태"라고 불렸다.[7] 그 해 상위권 팀들 중 가장 먼저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지으며,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8] 류제국의 맹활약으로 최종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했으나, 팀은 경험 부족을 드러내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하며 2013년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4년 4월 23일 팀의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고, 후임으로 양상문이 새 감독으로 선임됐다.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편집

감독 사퇴 6개월 만인 2014년 10월 28일 선동열의 후임으로 고향 팀의 감독으로 취임복귀했다. 그로부터 약 3년 후인, 2017년 10월 3일 시즌 마지막 경기 kt 위즈전에서 대승을 거둬 2009년 이후 8년만이자, 개인 첫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으며 또한 선수 시절엔 이루지 못했던 한국시리즈에서의 우승을 이뤄냈다. 2018년 시즌 종료 전에 임창용을 방출시켜 팬들의 질책을 많이 받았다. 2019년 5월 16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2번째로 시즌 중에 자진 사퇴했다.

출신 학교편집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 타격왕(1997년)
  • 홈런왕(1994년)
  • 출루율왕(1992년, 1997년, 1998년)
  • 장타율왕(1994년, 1997년)
  • 골든 글러브상 지명타자 부문(1992년, 1993년, 1994년, 2004년)

1997년 시즌에 이승엽과 함께 타격 3관왕을 기록했다. OPS는 1위를 기록했으나 후반기에 부상으로 15경기를 결장했다. 그의 부상은 정규 시즌을 3위로 마친 쌍방울 레이더스플레이오프 탈락에도 영향을 미쳤고, 누적 기록 뿐만 아니라 이승엽, 이종범, 양준혁과의 홈런 경쟁에서도 밀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홈런 수는 이승엽과 6개차, 2위 그룹과는 불과 4개 차이였다.

주요 기록편집

기록 날짜 소속 구장 상대팀 상대 투수 경기수 달성 당시 나이 기타 각주
600타점 1998. 5. 24 삼성 잠실 LG 8번째
2000루타 2000. 7. 5 삼성 대구 두산 1070 31세 1개월 12일 5번째

통산 기록편집

















2

3



















O
P
S












4
1991 쌍방울 22 124 508 427 65 112 15 0 27 92 7 4 72 93 .262 .370 .487 .857 208 9 4 0 5 4
1992 23 123 525 398 86 120 28 3 31 96 5 7 114 84 .302 .461 .621 1.082 247 11 8 0 5 18
1993 24 96 395 317 36 76 17 2 9 43 11 5 73 57 .240 .380 .391 .771 124 7 1 0 4 8
1994 25 108 454 376 70 119 20 4 25 79 9 10 74 70 .316 .430 .590 1.020 222 10 2 0 2 13
1995 26 116 482 402 48 129 34 3 12 72 12 10 72 44 .321 .419 .510 .929 205 8 1 0 7 15
1996 27 91 366 310 47 92 17 3 12 53 3 6 54 48 .297 .399 .487 .886 151 9 0 0 2 20
1997 28 111 478 390 95 134 30 3 26 79 10 7 84 54 .344 .460 .636 1.096 248 11 2 0 2 14
1998 29 126 541 434 84 134 28 4 31 90 10 5 104 79 .309 .440 .606 1.046 263 11 0 0 3 15
1999 삼성 30 130 560 468 82 137 33 2 28 88 5 4 82 95 .293 .403 .551 .954 258 9 6 1 3 6
2000 31 101 395 333 69 103 24 1 26 80 5 1 57 56 .309 .410 .622 1.032 207 6 2 0 3 7
2001 32 44 102 85 5 15 2 1 0 9 0 0 16 17 .176 .314 .224 .537 19 1 1 0 0 1
2002 SK 33 101 337 284 32 73 15 1 9 46 2 1 47 57 .257 .359 .412 .771 117 6 0 3 3 0
2003 34 93 265 236 32 69 7 0 3 18 2 2 27 30 .292 .364 .360 .724 85 4 0 1 1 0
2004 35 126 465 403 60 129 24 0 10 67 2 4 57 55 .320 .404 .454 .858 183 10 0 4 1 6
2005 36 54 130 112 5 23 4 0 0 11 0 0 15 23 .205 .297 .241 .538 27 4 0 2 1 1
KBO 통산 : 15년 1544 6003 4975 816 1465 298 27 249 923 83 66 948 862 .294 .407 .515 .923 2564 116 27 11 42 129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등번호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임
박종훈
제10대 LG 트윈스 감독
2011년 10월 7일 ~ 2014년 4월 23일
후임
조계현(감독대행)
전임
선동열
제8대 KIA 타이거즈 감독
2014년 10월 28일 ~ 2019년 5월 16일
후임
박흥식(감독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