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검(薛仁儉, ?-?)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창(淳昌)이다. 설신(薛愼)의 3남이며, 설공검(薛公儉)의 동생이다.
자세한 출사 경위는 알 수 없다.
1256년(고종 43)[1] 합주부사(陜州副使)로 재직 중, 최항(崔沆)을 비방했다는 학록(學錄) 정함(鄭瑊)의 참소를 받아, 남해현령(南海縣令) 정고(鄭皐), 급제(及第) 유여해(兪汝諧), 승려 명취(明就) 등과 함께 바닷섬으로 유배되었다.[2]
1271년(원종 12) 세자(훗날의 충렬왕)를 수행해 원에 간 것으로 보이며[3], 이듬해 다른 수행원들이 고려로 돌아가고 싶어서 세자에게 귀국을 권했을 때, 김서(金忄胥) 등과 함께 이를 만류하여 그만두게 했다.[4]
이후 관직이 사재경(司宰卿)에 이르렀다.[5]
- 증조 - 설정숙(薛挺叔)[6] : 사문박사(四門博士)
- 조부 - 설선필(薛宣弼)[6] :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 아버지 - 설신(薛愼, ? ~ 1251년) :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형부상서(刑部尙書)·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
- 어머니 - 고공낭중(考功郞中) 최입기(崔立基)의 딸[6]
- 형 - 설공검(薛公儉, 1224년 ~ 1302년)[7] :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 문량공(文良公), 충렬왕(忠烈王)의 배향공신
- 형 - 이름 미상, 조계종(曹溪宗)의 승려가 되어 보문사(普門寺)의 주지를 지냄[6]
- 부인 - 미상
- ↑ 『동국통감』
- ↑ 『고려사』 「최충헌전」
- ↑ 이 당시 세자를 수행한 20명 중에는 설인검의 형인 군기감(軍器監) 설공검(薛公儉)도 확인된다.
- ↑ 『고려사』 「원종세가」
- ↑ 가 나 『김승용 묘지명』
- ↑ 가 나 다 라 『설신 묘지명』
- ↑ 가 나 다 『씨족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