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노

소서노(召西奴, 기원전 66년[1]~기원전 6년) 음력 2월비류를 시조로 하는 백제 건국 설화에서 나오는 비류온조왕의 어머니이자 고구려 동명성왕의 두 번째 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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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
召西奴
지위
백제의 태후
대관식 소서노(召西奴)
전임 연타발(延陀勃)
후임 비류(沸流) 온조왕(溫祚王)
부왕 단군 고무서(檀君 高無胥) 연타발(延陀勃)
이름
?
이칭 ?
별호 소서노(召西奴)
연호 ?
묘호 없음
시호 ?
신상정보
출생일 기원전 66년
출생지 ?
사망일 기원전 6년 음력 2월
사망지 ?
매장지 ?
왕조 백제(百濟)
가문 ?
부친 단군 고무서(檀君 高無胥) 연타발(延陀勃)
모친 ?
배우자 우태(優台) 동명성왕(東明聖王)
자녀 비류(沸流) 온조왕(溫祚王)
종교 ?

설화편집

현재 정설로 받아 들여지는 설화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고구려 건국 설화에 나오는 내용으로 '동명성왕졸본에 정착하여 졸본 부여왕(이름 미상)의 둘째 딸(이름 미상)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비류온조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때 졸본 부여왕의 둘째 딸이라고만 기록 되어 있을 뿐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졸본 부여왕의 둘째 딸 즉, 동명성왕의 부인은 이름이 소서노인지 확실 하지 않다.

또 다른 설화에는 연타발(延陀勃)의 딸이며[2], 북부여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처음에 혼인하였다. 우태 사후, 동명성왕과 혼인하여 그를 도와 고구려 건국에 일조했다고 한다. 이후에 부여에 있던 동명성왕의 장남 유리명왕고구려에 올 때 추모왕과 결별하고 비류온조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 일로 인하여 백제가 세워진다

소서노의 죽음편집

삼국사기》에는 소서노의 죽음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온조왕 13년(기원전 6년) 봄 (음력) 2월, 경성에서 늙은 할미가 남자로 둔갑했고,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다. 왕의 어머니가 죽었다. 나이 61세였다. (十三年 春二月 王都老化爲男 五虎入城 王母薨 年六十一歲)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단군 고무서(檀君 高無胥) 졸본부여왕(卒本扶餘王) 연타발(延陀勃) 둘째딸이다.
  • 어머니 : ?
    • 첫 번째 남편 : 우태(優台) 동부여(東夫餘) 해부루왕(解夫婁王) 서손
    • 왕비 : 소서노(召西奴, 기원전 66~6) 졸본부여왕(卒本扶餘王)의 딸이다.
    • 두 번째 남편 : 동명성왕(東明聖王) 58~19 재위:37~19) 고구려(高句麗)의 초대 태왕(太王)
      • 차남 : 온조왕(溫祚王, ? ~28, 재위:18~28) (우태의 소생이라는 설도 있고, 주몽과 소서노가 혼인한 뒤 낳은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일본측 기록인 속일본기나 신찬성씨록은 온조를 주몽의 아들로 봤는데, 백제인들이 온조가 아닌 주몽을 태조라고 부른 것을 기록하였다.)

소서노가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온조왕의 어머니가 기원전 6년에 61세로 죽었다는 《삼국사기백제본기의 기록에 따라 추정.
  2. 일부는 비류국의 왕 송양(松讓)의 딸이라고도 한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