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차차웅

신라의 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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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24년, 재위 4년~24년)은 신라의 2대 국왕으로, 혁거세왕알영부인의 적자이다. 이름은 남해(南解), 다른 이름은 민해(愍海)이다. 그의 칭호에 대하여는 국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 역할을 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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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남해차차웅
新羅 南解次次雄
지위
신라의 2대 국왕
재위 4년-24년
전임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
후임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부왕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
이름
박남해(朴南解)
이칭 민해(愍海)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신상정보
출생일 ?
출생지 ?
사망일 24년
사망지 ?
왕조 신라(新羅)
부친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
모친 알영부인(閼英夫人)
배우자 운제부인(雲帝夫人)
종교 불교(佛敎)

치세편집

원문편집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元年

{{○<南解>次次雄立,[次次雄或云慈充。<金大问>云:"方言谓巫也。世人以巫事鬼神尙祭祀,故畏敬之,遂称尊长者,为慈充。"]<赫居世>嫡子也。身长大,性沈厚,多智略。母<阏英>夫人,妃<云帝>夫人。[一云<阿娄>夫人。]继父卽位,称元。|"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남해거서간(南解居西干)은 또한 차차웅이라고도 하니, 이것은 존장의 칭호로서 오직 이 임금에게만 칭한 것이다" 라고 전한다. "차차웅"이라는 왕호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김대문을 인용하여, "차차웅 혹은 자충(慈充)은 무당을 이른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에, 그를 외경해 마침내 존귀한 어른을 일컬어 자충이라고 하게 되었다." 고 전하는 바, 당시까지 신라샤머니즘의 부족사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여 있었다고 해석된다.|삼국유사}}

○论曰:人君卽位,踰年称元,其法详于『春秋』,此先王不 {刊}之典也。『伊训』曰:"<成汤>旣没,<大甲{太甲}>元年。"『正义』曰:"<成汤>旣没,其岁卽<大甲{太甲}>元年。"然『孟子』曰:"<汤>崩,<大丁{太丁}>未立,<外丙>二年,<仲壬>四年。"则疑若『尙书』之脱简,而『正义』之误说也,或曰:"古者,人君卽位,或踰月称元年,或踰年而称元年。"踰月而称元年者,<成汤>旣没<大甲{太甲}>元年,是也。『孟子』云:"<大丁{太丁}>未立"者,谓<大丁{太丁}>未立而死也。"<外丙>二年,<仲壬>四年"者,皆谓<大丁{太丁}>之子<大甲{太甲}>二兄,或生二年,或生四年而死,<太甲>所以得继<汤>耳。『史记』便谓此<仲壬><外丙>为二君,误也。由前,则以先君终年,卽位称元,非是。由后,则可谓得<商>人之礼者矣。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零一年

○元年,秋七月,<乐浪>兵至国{围}<金城>数重。王谓左右曰:"二圣弃国,孤以国人推戴,谬居于位,危惧若涉川水,今邻国来侵,是孤之不德也,为之若何?"左右对曰:"贼幸我有丧,妾{妄}以兵来,天必不佑,不足畏也。"贼俄而退归{果退}。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零三年

○三年,春正月,立始祖庙。冬十月丙辰朔,日有食之。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零五年

○五年,春正月,王闻<脱解>之贤,以长女妻之。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零七年

○七年,秋七月,以<脱解>为大辅,委以军国政事。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零八年

○八年,春夏旱。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一一年

○十一年,<倭>人遣兵船百余 ,掠海边民户,发六部劲兵,以御之。<乐浪>谓内虚,求{来}攻<金城>,甚急。夜有流星,坠于贼营,众惧而退,屯于<阏川>之上,造石堆二十而去。六部兵一千人追之,自<吐含山>东,至<阏川>,见石堆,知贼众,乃止。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一三年

○十三年,秋七月戊子晦,日有食之。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一五年

○十五年,京城旱。秋七月,蝗,民饥,发仓 救之。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一六年

○十六年,春二月,<北溟>人耕田,得<濊>王印,献之。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一九年

○十九年,大疫,人多死。冬十一月,无氷。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二零年

○二十年秋,大白{太白}入太微。

一卷新罗本纪一南解次次雄二一年

○二十一年,秋九月,蝗。王薨,葬<蛇陵园>内。

번역편집

6년(즉위 3년) 음력 1월에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묘(廟)를 세웠고, 8년(즉위 5년)에 석탈해를 맏사위로 받아들였고, 10년(즉위 7년)에는 그를 대보(大輔)로 삼아 군사와 국정에 대한 일을 맡겼다.

남해 차차웅의 치세에는 외침이 잦았다. 남해 차차웅이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두 성인이 나라를 버리시고 내가 나라 사람들의 추대로 그릇되이 왕위에 있어, 두려움이 마치 냇물을 건너는 것과 같다. 지금 이웃 나라가 와서 침범하니, 이는 내가 덕이 없는 까닭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좌우의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적(賊)이 우리가 국상(國喪)을 당하였음을 다행으로 여겨서 망령되게 군사를 이끌고 왔으니 하늘이 반드시 그들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적이 잠시 후에 물러갔다. 14년(즉위 11년)에 가 민가를 노략하여 6부의 병사들을 내보내 격퇴하였다.

18년, 경주에 가뭄이 들었다. 음력 7월에 메뚜기떼의 재해가 있어 백성들이 굶주렸으므로 창고의 곡식을 풀어 그들을 진휼하였다. 고구려에 복종하는 일곱 나라가 와서 투항하였다.(월 미상)

24년(즉위 21년)에 죽어 경주 사릉원(蛇陵園) 안에서 장사지냈다.

가계편집

박씨사소부인
혁거세 거서간알영부인
남해 차차웅

남해 차차웅이 등장한 작품편집

참고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전 대
혁거세 거서간
제2대 신라 국왕
4년 ~ 24년
후 대
유리 이사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