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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순경(沈順徑, 1462년 ~ 1542년)은 조선 전기의 무신이자 공신이다. 본관은 청송. 자는 사준(司遵), 봉군호는 청성군(靑城君)이다. 시호는 호양(胡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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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순경
沈順徑
작위
청성군
(靑城君)
신상정보
출생일 1462년
출생지 조선
사망일 1542년
사망지 조선
배우자 정부인 고령 신씨
종교 유교(성리학)
심순경
沈順徑
출생1462년
조선
사망1542년
조선
성별남성
국적조선
별칭청성군(靑城君)
호양공(胡襄公)
직업무신 · 공신
종교유교(성리학)
부모심한(양부)
심원(친부)
배우자정부인 고령 신씨
자녀4남 3녀
심희원
심흥원
심인원
심장원
친척심순도(형)
심순문(동생)
심연원(조카)
심달원(조카)
심봉원(조카)
심통원(조카)

가계편집

세조영의정을 지낸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의 손자로, 내자시 판관 심원의 아들이며, 한성부 우윤 청천군(靑川君) 심한에게 입양되었다. 연산군에 의해 참수된 심순문의 형이다.

생애편집

1492년(성종 23년) 무과에 급제하여, 연산군 때, 선전관을 거쳐 내승(內乘)을 지냈다.

1506년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과 함께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을 호위하여 중종으로 옹립시켰다. 그리고 연산군을 잡아 강화교동도로 압송하였다.

이 공으로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경상우도 절도사를 거쳐, 1508년(중종 3년) 청성군(靑城君)에 봉해졌다.

그 뒤, 충청도 수군절도사[1]를 거쳐, 1512년 함경도 길주목사, 전라도 절도사, 1514년 경상도 병마절도사[2], 1520년 지변사(知邊事)[3], 1521년 한성부 좌윤 겸 성절사(聖節使)[4], 1525년 경연특진관 겸 포도대장[5], 1526년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 북경에 다녀온 후, 1527년 한성부 좌윤[6]이 되고, 1528년 한성부 좌윤 겸 포도대장이 되었다.[7][8] 1534년에는 원유사 제조(苑囿司提調)가 되었다.[9]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고조부 : 심덕부 - 조선개국공신, 청성백, 정안공, 문하좌정승
    • 증조부 : 심온 - 세종의 국구, 청천부원군, 안효공, 영의정
      • 조부 : 심회 - 익대공신, 좌리공신, 청송부원군, 공숙공, 영의정
        • 양부 : 심한 - 좌리공신, 청천군, 이경공, 한성부 우윤
        • 양모 : 정부인 성주 이씨 - 참판 이사순(李師純)의 딸, 영의정 성산부원군 문경공 이직(星山府院君 文景公 李稷)의 손녀
        • 친부 : 심원 - 내자시 판관, 증 좌찬성
        • 친모 : 증 정경부인 전주 이씨
          • 친형 : 심순도 - 돈녕부 도정
          • 친동생 : 심순문 - 사헌부 장령, 증 영의정
          • 부인 : 정부인 고령 신씨
            • 아들 : 심희원 - 금산군수, 증 이조참의
            • 아들 : 심흥원 - 진사
            • 아들 : 심인원 - 좌랑
            • 아들 : 심장원
            • 딸 : 양천 허씨 제양군 동지중추부사 허순에게 출가
            • 딸 : 평양 조씨 현감 조욱에게 출가
            • 딸 : 연안 김씨 참봉 김달사에게 출가

참조편집

  1. 《중종실록》18년(1523) 6월 26일 5번째 기사
  2. 《중종실록》9년(1514) 7월 8일 3번째 기사
  3. 《중종실록》15년(1520) 11월 21일 1번째 기사
  4. 《중종실록》16년(1521) 8월 10일 1번째 기사
  5. 《중종실록》20년(1525) 12월 14일 3번째 기사
  6. 《중종실록》22년(1527) 5월 6일 5번째 기사
  7. 《중종실록》23년(1528) 7월 3일 5번째 기사
  8. 《중종실록》23년(1528) 7월 3일 7번째 기사
  9. 《중종실록》29년(1534) 10월 10일 1번째 기사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