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청
역사편집
당시 개성유수(開城留守) 이귀(李貴)가 장정 260명을 모아 화포술(火砲術)을 가르치고 이를 어영군(御營軍)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조선 정부는 이귀를 어영사(御營使)에 임명하고 어영찬획사(御營贊劃使), 찬리사(贊理使) 등의 벼슬을 신설하여 군대를 개편하였다. 1624년에는 총융청에 소속되었다가 1628년 새로 어영청을 설치하여 어영대장(御營大將)을 수장으로 하였다. 1652년(효종 3년)에는 효종의 북벌 계획에 의해 어영청을 정비, 강화했다. 특히 효종때는 21,000명까지 증가하여, 1,000명의 도성 상주 병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주로 포나 조총을 쓰는 포수를 양성하는 군영이었다. 이 군사 부대의 군량미 창고로는 남창(南倉)이 있었다. 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와 제1야전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청사편집
- 본영(本營) : 연화방(蓮花坊), 즉 종묘 정문 동쪽에 있었다. 505칸[間] 규모.
- 남소영(南小營) : 명철방(明哲坊)에 있었다.[1] 194칸 규모.
- 남창(南倉) : 남소영 북쪽에 있었던 어영청의 군수 창고이다. 137칸 규모.
- 화약고(火藥庫) : 남소영 안에 있었다. 52칸 규모.
- 동영(東營) : 창경궁의 선인문 아래에 74칸, 경희궁의 개양문 아래에 10칸 규모로 있었다.
- 북이영(北二營) : 경희궁 북쪽에 있었다. 68칸 규모.
- 집춘영(集春營) : 창경궁 집춘문 밖 남쪽에 있었다. 16칸 규모.
- 직방(直房) : 창덕궁 금호문 밖에 23칸, 경희궁 흥화문 밖에 10칸 규모로 있었다.
관제편집
어영청에 설치된 관직은 아래와 같다. 시기에 따라 일부 변동이 있었다.
- 정1품 도제조(都提調) 1명 : 다른 관원이 겸직
- 정2품 제조(提調) 1명 : 병조판서 겸직
- 종2품 대장(大將) 1명 : 등단 장신(將臣)
- 종2품 중군(中軍) 1명 : 어영청의 부지휘관 또는 참모장 역할
- 정3품 별장(別將) 1명
- 정3품 천총(千摠) 5명
- 정3품 별후부천총(別後部千摠) 1명 : 영종첨사 겸직
- 정3품 기사장(騎士將) 3명
- 종4품 파총(把摠) 5명
- 종4품 외방겸파총(外方兼把摠) 10명 : 각급 지방관 겸직
- 종6품 종사관(從事官) 2명 : 문관 1명, 무관 1명
- 종9품 초관(哨官) 41명
- 기타 교련관(敎鍊官), 기패관(旗牌官), 별무사(別武士), 군관(軍官) 등 설치.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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