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봉 이씨
우봉 이씨(牛峰李氏)는 황해북도 금천군 우봉면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이공정(李公靖)은 고려 명종 때에 금자광록대부 벽상삼한공신(金紫光祿大夫壁上三韓功臣)이다.[1]
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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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황해북도 금천군 우봉면 |
시조 | 이공정(李公靖) |
집성촌 | 황해도 금천군 충북 옥천군 이원면 충북 청주시 가덕면 경북 문경시 경기 양평군 |
주요 인물 | 이자성, 이승건, 이숙, 이만성, 이재, 이채, 이휘정, 이광문, 이호준, 이호익, 이호철, 이윤용, 이완용, 이항구, 이병도, 이병길, 이병임, 이병주, 이병훈, 이기녕, 이춘녕, 이어령, 이장무, 이건무, 이영범 |
인구(2015년) | 23,902명 |
역사
편집우봉 이씨(牛峰李氏)의 원조는 이두창(李頭昌)으로 신라의 우장군으로 지략이 뛰어나 옥저(沃沮)로 하여금 양마 200필을 헌납하게 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 후손 이공정(李公靖)을 시조로 하고 있다.
우봉이씨(牛峰李氏)의 시조 이공정(李公靖)은 시호가 문경(文景)으로, 고려 때 사람이다. 이공정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벽상삼한공신(壁上三韓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잠성부원군(岑城府院君)에 봉해졌고 우봉(牛峰) · 잠성(岑城) 등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그 곳에 세거하면서 관향(貫鄕)을 우봉(牛峰)으로 하였다. 그의 아들 이자성(李子晟)은 고려시대의 인물로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고 몽골 침략을 막아내는 공을 세웠고 각종 반란을 진압하였다. 일제 시대에는 정치인 이완용(李完用) 후작을 배출하였다.
본관
편집우봉(牛峰)은 황해도 금천군 우봉면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에는 우잠(牛岑:牛嶺‧首知衣)이라 불렸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우봉으로 고쳤다. 1015년(고려 현종 6)에는 평주현(平州縣: 平山)에 예속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경기도 개성부에 예속되었다. 1395년(태조 4)에 현으로 승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황해도에 속하였다. 1469년(예종 1)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1652년(효종 3)에 [강음(江陰)‧우봉을 합쳐 금천군으로 개칭하였다.
인물
편집- 이공정 - 시조. 고려 병부상서.
- 이자성 - 문하평장사.
- 이길배 - 조선 황해도관찰사
- 이승건 - 함경도관찰사, 호조참판.
- 잠성부부인 이씨 - 영조의 국구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처, 정성왕후의 어머니
- 이숙 - 우의정, 이조판서.
- 이만성 - 이•병조판서. 이숙의 아들.
- 이광문 - 의정부 우참찬, 이•형조판서, 한성부판윤, 전라도관찰사
- 이광정 - 이•호•형조판서, 한성부판윤, 경기•강원도관찰사
- 이우 - 판의금부사, 의정부 좌•우참찬, 이•예•형•공조판서, 한성부판윤, 경기관찰사
- 이완용 - 주요 친일파. 내각총리대신, 학부•외부대신, 조선귀족 후작.
- 이윤용 - 주요 친일파. 형조판서. 대한제국 군부•농상대신. 조선귀족 남작. 한성은행 은행장. 이완용의 이복서형.
- 이항구 - 주요 친일파. 이왕직 장관, 조선귀족 남작. 이완용의 차남.
- 이병도 -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서울대 교수, 문교부장관
- 이어령 -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이화여대 교수, 문화부 장관. 이병도의 7촌 조카.
- 이장무 - 서울대 총장. 이병도의 친손자.
- 이건무 - 문화재청장. 국립중앙박물관장. 이병도의 친손자.
- 이동녕 - 제4•6•7대 국회의원. 봉명그룹 창업주.
- 이세무 - 前 봉명그룹 회장. 이동녕의 장남.
- 이병무 - 아세아그룹 명예회장. 이동녕의 차남.
- 이승무 - 제14대 국회의원. 前 봉명그룹 부회장. 이동녕의 3남.
- 이윤무 - 아세아제지 명예회장. 이동녕의 4남.
- 이훈범 - 아세아그룹 회장. 이병무의 장남.
- 이인범 - 아세아그룹 부회장. 이병무의 차남.
- 이현범 - 우신벤처투자 전무. 이윤무의 장남.
- 이병훈 - MBC PD.
- 이범수 - 배우
항렬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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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편집집성촌은 황해도 금천군 우봉면을 비롯하여 충남 보령시 미산면, 충북 청주시 가덕면, 옥천군 이원면, 경북 경주시, 문경군, 경기도 양평군 등이 있다.
인구
편집- 1985년 4,278가구 17,513명
- 2000년 6,388가구 20,525명
- 2015년 23,902명